영화2009.06.17 21:55


지난 일요일, 동네 영화관에서 봉준호 감독의 새영화 '마더'를 보고 왔습니다.
조조여서 그런지, 18세이상 관람가라는 등급때문인지, 아니면 가볍지않은 영화내용 때문인지 극장은 한산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신분증이 없어 영화를 못보는(본인들 주장에 따르면 스무살인) 아가씨들 여럿이 안타깝게 발을 구르고 있었습니다. 
 
작년 가을, 역시 이 영화관에서 혼자 봤던 '영화는 영화다'(순전히 소지섭에 대한 새댁의 개인적인 애착으로 선택한~^^;) 이후
두 번째 극장 나들이였습니다, 똑순이 낳고 나서 1년 사이에 한. ^^

이번 영화관람은 똑순이가 오전 낮잠에 든뒤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입니다.
개봉전부터 가끔 신랑과 '마더 개봉하면 나 꼭 보러갈래!', '응, 보고와~'하고 얘기했었지만 날짜를 정하진 않았었어요.
별일없는 일요일, 새벽일찍 일어난 똑순이가 마침 아침 10시쯤 오전낮잠을 자기 시작했습니다.
'음.. 이제 뭐하지... 아, 마더! 이 시간이면 조조도 볼 수 있겠는데?'
부랴부랴 인터넷으로 시간표를 찾아보니 조조까지 40분이 남아있었습니다. 오호라~! ㅎㅎ

잠이 덜깬 신랑을 컴앞에 데려다놓고, '이걸 보러 다녀오겠소' 얘기하고
'똑순이가 깨면 과일간식을 주고, 같이 잘 놀고 계시오. 여유있으면 점심밥도 좀 해두시구랴~' 당부한뒤 신속하게 집을 나섰습니다.
갑작스런 사태 전개에 신랑은 잠시 저항했으나 곧 체념하고 불안한 모습으로 새댁을 배웅했습니다.

집을 나서 혼자 동네길을 걸어가며 잠시 그 홀가분함이 어색했습니다.
혼자 외출하는 것이 얼마만인지.
업거나 안을 아이없이, 밀 유모차없이, 들 가방 하나 없이
홀홀단신 이렇게 길을 걸어보는 것이 얼마만인지.
갑자기 자유의 기분이 밀려왔고, 
내 한몸만 움직이면 된다는 사실, 그 가볍고 편안한 느낌이 신기했습니다.
애기엄마가 되고 나니 그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누리던 작은 자유들에 더 없이 민감해지고 절실해집니다.

연신내역에 다 갔을때쯤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똑순이가 깨면 엄마를 찾을텐데.. 많이 울면 어쩌나..
엄마가 어딜 다녀올거라고 미리 말을 해줬어야하는데.
그래야 덜 겁내고, 나름대로 불안함을 이기려고 애쓰면서 엄마가 돌아오기를 기다릴텐데.. 

'돌아갈까?' 생각하다가 
다시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을것 같고, 아빠가 함께 있으니 어떻게든 달래줄거라 생각하며 
불안해지는 마음을 애써 누르며 극장에 들아가 앉았습니다.


(아래 글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 사진은 다음 영화소개에서 퍼왔습니다. 다음 영화소개 바로가기


영화는 아주 잘 만들어져서
시종 긴장감과 서글픔을 안고 밀도있게 전개되는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새댁에게 가장 압권이었던 대목은 
김혜자가 검거된 '기도원 종팔이'를 면회하면서 "너 엄마 없어?"라고 물으며 울음을 터트리는 장면이었습니다.
"너는 가족이 없니? 너 엄마 없어?" 거의 울부짖다시피 쏟아내는 이 질문이
엄마라는 타이틀을 달고 산지 이제 겨우 1년 남짓된 새댁의 가슴에 아프게 파고 들었습니다. 

이 무섭고 무기력한 사회에서, 보통 사람도 아닌 장애인으로 살면서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뒤집어쓴 너를 위해 싸워줄 단 한사람, 엄마가 없느냐... 는 질문.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는 늘 공권력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힘없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아니, 공권력 자신도 무기력하고 무능해서 자신의 책임을 다할수 없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봉 감독은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힘없는 사람들은 시스템을 이용하지 못한다, 자신들의 힘으로 헤쳐나갈 수 밖에 없다'는 얘길 했습니다.

돈이나, 지식이나, 권력이나.. 아무튼 무언가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제 이만큼이나마 갖춰진 사회 시스템이 자신들의 삶의 안전을 지키기위해 활용 가능한 것일 수 있으나
약자들에게는 아직 어림없습니다. 
그래서 약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최소한의 무기(가족)로 싸웁니다.
'괴물'에서 그랬듯이, '마더'에서도.

이 영화에서 최후의 약자(부서지는 존재)는 그 가족조차 없는 사람들입니다.
여고생 문아정(치매 할머니는 소녀를 보호할 수 없는 존재)이 그렇고, 기도원 종팔이가 그렇고, 고물상 할아버지가 그렇습니다. 
슬펐습니다. 
혼자여도 인간답게,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 스스로를 지키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는 아직 너무 멉니다.
특히 돈이 없고, 장애가 있어도 혼자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는...  





+ 사진은 역시 '다음 영화소개'에서 퍼왔습니다.


영화가 끝난후 뭐라 말하기 힘든, 감동인 것 같은데 너무 처연한 그런 감정이 밀려와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아주 대중적이고 탁월한 이야기꾼인 봉준호 감독의 새영화 '마더'가 
그 전작들(살인의 추억, 괴물)처럼 흥행하지 않는 이유는     
청소년 성매매라는 소재의 민감함도 있지만 
그보다 '마더'는 관객들을 불편하게 하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에서 선과 악이 분명하면 기꺼이 선의 편에 서면서 관객은 안심하고, 열렬해집니다.
악은 이해할 수는 있지만, 내 입장으로 받아들이는게 기껍지는 않지요.
'살인의 추억'에서 관객은 무능하지만 최선을 다했던, '미치도록 잡고싶었다'고 절절하게 말하는 시골형사들의 편에 기꺼이 설 수 있었습니다.
'괴물'에서도 아무 소용없고 도리어 훼방만 놓는 공권력 대신 딸(손녀, 조카)을 찾아나선 그 일가족의 편에 서서 함께 분노하고 싸우면 되었고요. 

그러나 '마더'에서는 그 선이 없습니다.
김혜자와 고물상 할아버지의 첫만남에서 그려지듯
없이 살지만 도덕적인 개인들이, 너무도 비도덕적인 행동들을 하면서 살 수 밖에 없게 하는 사회가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나온 제 마음도 한동안 불편했습니다.
나를 들킨 것같아서..
나도 내 새끼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느 순간엔 동물적인 본능만 갖고 험한 세상을 헤치고 다닐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그러나 들킨 것은 사람들만이 아니라 
사람들을 선도 악도 아닌, 아니 선과 악을 모두 한몸에 지니고 살아갈 수 밖에 없게 만들고 있는 이 '사회'이기도 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는 사회를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피묻은 손을 치마에 쓱쓱 문질러 닦고, '잊을 수 없는 것들을 잊도록' 해주는 침을 놓고.. 
눈을 감고 춤을 추는 인간의 진한 비애를 가감없이 전하는 영화,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칸의 기립박수가 이해되었습니다.   




 
 + 사진은 역시 '다음 영화소개'에서 퍼왔습니다. 



영화관람의 후과는 커서, 
똑순이는 엄마가 돌아온 후 엄마 옆에서 잠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다음날은 낮잠도 깊이 들지 못해서, 엄마가 옆에서 사라지면 금세 '으앙~'하고 깼습니다. 
엄마가 영화보는 두시간 동안 아빠랑 잘 놀다가도 
'문득' 엄마가 생각나면 엄마가 있을법한 화장실 문앞으로 기어가서 문을 두드리고 울었다 합니다. 

다행히 어제오늘은 괜찮아져서 낮잠도 잘자고 밤잠도 잘 잡니다.
그래도 저 어린 마음 한구석에 작은 불안이 자리잡았을걸 생각하면 미안합니다. 엄마가 나를 두고 가면 어쩌나 하는.. 
앞으로는 어디 혼자 갈 일이 있으면 꼭 똑순이한테 여러번 얘기하고, 가능하면 미리 둘이 안녕하는 연습도 하고 다녀와야겠습니다.   

처지가 처지인지라 영화보는 내내 집에 두고온 한살짜리 아들이 그렇게 마음에 걸렸다지요..
'엄마에 대한 신뢰'는 아이가 세상에 대해 갖는 최초의 신뢰라는데
세상에 아이를 내놓은 어미로서의 책임이 어디까지인지는 몰라도 
인간의 마음을 가진, 그 마음을 지키고 살아가는 사람으로 키우기위해서는 신뢰가 제일 기본일 것 같습니다.




모처럼 본 영화가 하필 생각할게 많은 영화여서
한 며칠 애기업고 왔다갔다 하며 생각하고 조금 쓰고 또 생각하고 조금 쓰고(그러다 한번 저장이 안되서 날리고ㅠ).. 하다 이제사 글을 마무리합니다.

초하님으로 부터 '책나눔 동시이벤트'하신단 얘기듣고 참 좋은 뜻같아 '저도 꼭 참가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말만 해놓고 
정작 며칠 끌어온 이 글쓰며 쩔쩔매느라 때를 놓쳤습니다. 책나눔에 대한 고민도 영 부족했구요.
죄송하단 말씀과 함께 다음을 기약해야겠습니다. 혹 제 블로그오신 분들중에 관심있으신 분은 초하님 블로그를 방문해보셔요.
아주 멋진 책나눔 축제가 지금 진행되고 있을 것입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