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스푼'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3.01.31 기차가 지나는 마을 6
  2. 2011.11.28 국수먹는 주말 14
  3. 2011.11.22 실버스푼, 따뜻한 정을 먹는다 13
여행하는 나무들2013. 1. 31. 22:45





하루가 저물 즈음이면 참 고단하다.

무슨 특별한 일이 있어서 고단한 게 아니고 그냥 매일 보내는 평범한 일상의 일들이 힘이 든다. 

특히 아이들과 세 끼 밥을 차려먹고 치우는 일. 

그래봐야 국 한가지를 새로 끓이거나 아이들 입맛에 맞는 반찬 한가지 새로 하는 것, 그도 아니면 볶음밥처럼 약간 별식같은 한그릇 음식을 만들어서 

아이들과 머리 맞대고 '맛있다' 하고 먹을 수 있게 하는 일... 그 일이 제일 힘들다. 

어찌어찌 저녁까지 잘 차려먹고 아이들 양치시키며 하루를 마무리할 준비를 할 때, 

몸도 마음도 오늘 하루치 에너지를 다 쓰고 이제는 정말 바닥에 조금 깔릴 정도밖에 힘이 남지 않았음을 느낀다.

두 녀석 밥 해먹이는 일도 이런데 셋이 되면 어찌 다 먹이고 지낼꼬... 

새삼 어린 시절 기본 열은 되던 대식구 밥을 다 해내셨던 울엄마가 대단하게 느껴지고, 아이셋 어른둘 고작 다섯식구의 밥 해먹는 일도 큰 걱정이 되어 근심하는 내 짧은 실력이 안타깝다.


블로그도 꽤 오랫만에 쓴다.

저녁이 되면 고단하기도 하고, 그래도 또 이것저것 관심있는 책이나 영상 좀 찾아서 보고, 산모체조도 하고 낮에 하기 어려웠던 연락이나 인터넷  주문같은 일을 한두가지 하고나면 시간이 훌쩍 가서 12시 가까이 되어있곤 했다.

쓰고싶은 얘기는 참 많은데 쉽게 잘 써지지는 않고, 다른 할 일은 많은 요즘이다. 

바다가 태어날 때가 가까워오니 이것저것 준비하고 미리 정리해두어야할 것같은 일도 많이 생각나는데 요즘같아서는 영 쉽지가 않네... 

천천히, 마음을 좀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하나씩 차근차근 정리해두어야겠다. 

  









무튼 오늘 쓰려고하는 얘기는 지난 주말과 지지난 주말에 다녀온 기차여행 이야기. ^^


기차가 타고 싶었다.

우리집 옆으로 지하철이 다닌다. 

5호선 종점인 상일동역에서 운행을 마치고 차량기지로 천천히 들어가는 지하철, 차량기지에서 잘 쉬고 다시 일을 시작하러 상일동역으로 가는 지하철 기차를 

우리 아파트 놀이터와 냇가길을 산책하다보면 늘 보게 된다.


연호는 기차를 '치치'라고 부른다.

연수랑 연호랑 놀이터나 냇가길에서 지하철을 볼 떄 저녁 무렵이면 '치치가 아빠 데리러 가나보다' 얘기하곤 했다. 

아빠는 5호선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지금 아이들이 손을 흔들어 배웅하는 저 기차가 다시 상일동으로 돌아올 때쯤이면 하루 일을 마친 고단한 아빠를 태워가지고 올 지도 모른다. 

연호는 '치치'하고는 제 가슴을 톡톡 치곤했다. 연호도 기차 타보고 싶다는 말이다. 

'그래, 연호도 다음에 기차 타보자, 엄마랑 형아랑 아빠랑 같이 타보자~'하면 크게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치치, 아빠~'하면서 제 가슴을 두드리면 '연호도 치치타고 아빠한테 갈꺼야' 하는 말이 된다. 

놀이터에서 노는 동안 우리는 몇번씩 지나가는 기차를 보며 같은 얘기를 하고, 같은 꿈을 꾸고는 했다.


1월초에 외갓집에 다녀온 후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정이 많이 든 연호는 기차를 보고 부르는 이름도 더 늘었다.

그전에는 '치치, 아빠~'만 했는데 이제는 '치치, 하삐~, 치치, 할미~'도 한다.

치치를 타고 하삐(할아버지)한테도 가고, 할미(할머니)한테도 가자는 말이다.   

보고싶은 어른들이 계시는 곳으로 저 '치치'를 타면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어린 마음이 짠하고 예뻐서 나는 늘 '그래, 나중에 치치 타고 하삐, 할미한테도 가자~'하고 대답해주곤 했다.









그런 얘기를 자주 나누다보니 정말로 기차를 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가 태어나기 전에, 연수와 연호를 데리고 정말로 기차를 타봐야지. 

가까운 곳으로, 잠깐 다녀오는 여행이라도 괜찮아. 기차를 타자. 


그래서 궁리하다가 찾아간 곳이 우리집에서 가까운 '팔당역'이었다.

서울에서 한강을 처음 만나는 곳에 사는 우리는 집에서 조금만 가면 덕소고, 팔당이고, 양수리다. ^^

처음엔 춘천쪽으로 가는 기차를 탈까 하다가 그러러면 제법 먼 모란역까지 가야하고, 막상 춘천에 가서 크게 할 일은 없을 것같고 해서 

별일없이 쉬던 일요일, 점심까지 집에서 잘 챙겨먹은 뒤에 오후에 뭐할까.. 하다가 즉흥적으로 팔당역으로 떠났다.


20분 정도밖에 안걸리는 팔당가는 길에 연호가 그만 차에서 낮잠이 들었다.

팔당역에 가서 보니 '남양주역사박물관'이 바로 옆에 있었다. 

잠든 연호와 아빠는 차에서 좀 쉬기로 하고, 연수와 나는 박물관 구경을 하고 오기로 했다.

어른 입장료 천원을 내고 들어간 작은 박물관.

언젠가 라디오 국악방송에서 잠깐 소개되는걸 들은 적이 있긴 했지만 큰 기대는 않고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남양주 지역의 전통문화유산들을 아주 정성껏 소개해놓았을 뿐만 아니라 연수만한 어린 아이부터 재미있게 해볼만한 여러가지 문화체험들이 소박하지만 깔끔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박물관 안에는 남양주 지역에 살았던 옛 문인들이 남긴 책과 글씨, 그림들이 많이 전시되어있었는데 비석글씨나 그림을 탁본을 해서 전시한 것도 많았다. 그리고 밖에 나가면 아이들이 직접 건식탁본이라고 해서 벽에 새겨진 그림문양위에 종이를 대고 주걱으로 문질러서 탁본을 할 수 있는 체험 마당이 있는 식이다. 

양주 별산대놀이같은 마당극을 직접 들어볼 수도 있고, 그 탈을 점토나 모래그림으로 만들어보고 작품을 가져갈 수도 있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살았던 곳이라 해서 정약용 선생이 개발한 거중기에 사용되었던 도르레 원리를 응용한 아이들 장난감도 직접 색칠해 가지고 놀 수 있었다.

연수는 도르레 꽃게를, 나는 연호 주려고 도르레 거북이를 하나씩 골라 색칠도 하고 바닥에서 굴리며 놀기도 했다. 

건식탁본도 재미나게 해보고, 점토 탈바가지도 하나 샀다. 

큰 돈 들이지 않고 여러가지 체험을 하며 오래도록 재미나게 놀고, 어른들과 아이들을 위해 커피와 한과, 떡같은 간식을 파는 휴게실도 있어서 '아 여기 또 오고 싶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다음에 우리집에 연수 친구들이 놀러오면 함께 한강을 따라 드라이브하며 팔당과 양수리도 구경한뒤 남양주역사박물관에 들러 같이 놀면 참 좋겠다. 

음.. 그러러면 내가 운전을 필히..! 아니, 그전에 바다를 좀 키워놓고.. 아, 할 일이 많고나.. 끙~~~^^;;   









박물관에서 신나게 놀다 시간이 너무 오래된 듯 해서 차로 가보니 방금 깼다는 연호가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연호야, 우리 치치 타러 가자!'하니 좋아서 얼른 내려달라고 성화였다.

팔당역 앞에서 기념사진을 한장 찍고 교통카드를 안들고 나온 엄마 덕분에 기차표(사실은 전철표)를 직접 돈내고 끊는 '체험'까지 해보며(ㅎㅎ)

우리 꼬맹이들 입장에서 보자면 엄청 크고 으리으리한 역사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탄 기차는 실은 '중앙선'이라 불리는 전철. ^^

우리는 팔당에서 양평까지 20분 남짓 되는 거리만 가보기로 했다. 거기서 조금 더 가면 중앙선 종점인 '용문산역'인데 산에 갈 생각이라면 몰라도 굳이 멀리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그야말로 기차타는 맛만 살짝 느껴보기로 했다. 

그래도 우리 동네쯤부터는 지하가 아니라 지상으로만 가기 때문에(터널은 여러번 통과하지만) 지하철이라기보다는 기차 느낌이 많이 났다. ^^


선로위에 하얗게 눈이 쌓여 있었다.

멀리 한강 건너로 보이는 높은 산들에도 눈이 덮여 아름다웠다. 

좋구나.. 집에서, 일상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이렇게 시원하고 아름답고 낯선 풍광속에 서있을 수 있구나... 

연호가 어느새 커서 유모차 없이도 이렇게 같이 걸어 기차를 타고 잘 구경하고, 잘 놀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날은 추웠지만 모처럼 콧바람을 쐰 엄마는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다. 









드디어 기차가 왔다.

전철 앞에 서서 이렇게 사진까지 찍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이게 신기하고 좋기만 한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ㅋㅋ 

 

연호는 늘 먼발치서 지나가는 것만 보았던 기차에 진짜 타는 것이 무척 긴장되었던 모양이다.

전철안에 타서 빈자리에 앉혀주자 가는 길내내 꼼짝도 안하고 아빠 옆에 딱 붙어 앉아있었다. 

대부분 터널 속을 많이 달리던 전철은 잠깐씩 역 근처에 옹기종기 들어앉은 작은 마을들을 보여주다가

딱 한번 잊을 수 없을만큼 멋진 풍경을 보여주었다.

양수리 근처쯤 될 것 같은데 한강 위에 놓인 다리를 아주 한참 동안 건넜다. 

얼어붙은 한강위로 눈이 하얗게 덮여있고, 다리의 양쪽 끝으로 큰산들이 아스라하게 서있던 그 풍경이 정말 아름다워서 핸드폰 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갈때와 올떄 모두 넋놓고 보기만 하다 미처 찍지 못했다.ㅠㅠ

다음에 다시 이 중앙선 전철을 타게되면 그땐 꼭 찍어야지... 근데 그때도 이렇게 흰눈덮인 겨울강이려나.. 그 풍경은 일년뒤에나 다시 볼 수 있는게 아닌지 모르겠다.









양평역에 내려서 역사에서 제일 가까운 식당에서 잔치국수와 냉면을 한그릇씩 먹었다.

출출했던 오후, 저녁을 먹기는 좀 일러서 간식으로 먹었는데 재미나게 기차여행을 하는 중이라 그랬는지 뜨끈한 국물의 잔치국수가 참 맛있었다. 

돌아오는 기차를 기다리며 아이들에게는 양평역 안에서 파는 와플을 하나씩 사주고 남편과 나는 큰 커피를 한잔 사서 나눠마셨다.

멀고 긴 여행도 좋지만,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이렇게 짧고 가까운 여행도 소소히, 자주 떠날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 우리는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다보면 아이들도 다 자라겠지.. 그리고 나중에는 우리 부부 둘만 여행하는 날도 오겠지.

그때까지는 요 녀석들 안고, 손잡고 같이 걷고 맛있는 군것질거리도 사먹여가면서 같이 재미나게 다니자, 여보. 










다시 돌아온 팔당역.

모자라지도, 아쉽지도 않게 딱 좋았던 한나절의 기차여행이었지, 연수?









다섯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벌써 푸른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팔당역사와 붙어있는 남양주역사박물관에 예쁜 불이 켜져 있었다.










두둥~~! 그런데 우리의 기차여행은 여기서 끝난게 아니다. ㅎㅎ

다음주에는 급기야 KTX를 타러 용산역으로 진출!!

팔당역 전철타기에서 너무 갑자기 건너뛴 것 같기는 하지만 

그전부터 연수가 고속열차를 타보고 싶다고 하기도 했고, 잠깐 다녀온 기차여행을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기도 해서 

그럼 이참에 멀리도 한번 슝~ 다녀와봐?! 하고 용감하게 길을 나선 것이다.


마침 늘 우리 가족을 따뜻하게 챙겨주고 좋아해주는 명이님과 연락이 되어 

벼르고벼르던 명이님 가족도 만나고, 기차도 재미나게 타러 토요일 아침, 광주로 가는 KTX에 올랐다. 











서울이 정말로 추웠던 아침이었다.

아침 일찍 있었던 기차 시간에 맞추느라 아이들도, 어른들로 부지런히 서둘러 집을 나섰다. 

짐은 최대한 줄이고, 먹을 것도 기차역에서 모두 사고, 우리 차대신 택시를 타고.. 어쩐 일인지 늦지않고 여유롭게 기차역에 도착해 크고 큰 기차역, 북적거리는 사람들 구경을 잘 했다. 

아이들은 당연히 처음이라(연수는 어릴때 기차를 두번쯤 타봤지만 아기 시절이라 기억하기 어려워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신기하고 

오랫만에 이렇게 사람많은 곳에 나온 엄마도 예전에 지방출장 많이 다니던 직장생활 시절을 추억하며 아침 기차역에 모인 사람들의 낯설고도 애잔한 풍경을 한참씩 바라보았다.


기다리던 고속열차가 드디어 왔다. 

즐겁고 신나는 와중에도 아침 일찍 일어나 하품이 나는건 어쩔 수 없구나, 우리 연수. ㅎㅎ










연수 신생아시절부터 블로그 이웃이 되어 연수 자라는 모습을 너무나 예쁘게, 다정하게 지켜봐주었던 명이이모와 미페이삼촌.

블로그를 통해 만난 이 두사람이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낳고 사는 동안 

우리 가족과 이 가족 사이에는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블로그라는 공간을 통해 오래도록 쌓아온 따뜻한 우정이 

아이들이 자라는 것 만큼이나 함께 무럭무럭 자라왔다.

그래서 명이님 가족을 만나러 가는 길은 오랫 못본 친동기간을 만나는 것처럼, 말그대로 이모삼촌과 조카들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설레고 좋았다. 

서로 아끼고 그리워하는 마음은 늘 댓글로, 가끔 주고받는 편지들로 익히 알고 있어서 막상 만나니 별말없이 얼굴만 보아도 참 좋았다. 그리고 그 얼굴들이 많은 얘기들을 담고 있었다. 

연년생 두 아이를 키우느라 명이는 못 본 사이에 많이 말라있었다. 

미페이도 처음 만났을 때의 그 풋풋하던(?) 총각 얼굴에서 어느새 두 딸을 키우는 아빠의 책임감이 느껴지는 묵직한 생활인의 얼굴이 되어있었다. 나와 남편의 모습도 그렇게 달라졌겠지...^^

 

우리는 아이들 이야기, 서로의 사는 이야기, 가족들, 블로그 이웃들 이야기를 아이들 데리고 놀고, 먹이고하는 정신없는 와중에도 꽤 많이 나누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명이님과 미페이님이 함께 하는 '실버스푼'에 대해서는 익히 그 맛있고 건강한 먹거리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있는 나인지라 그 사업을 일궈오며 두 사람이 팔았을 많은 발품과 수고와 마음고생과 기쁨에 대한 얘기들을 조금씩이라도 들을 수 있었던 것이 참 고맙고 좋았다.  


명이님과 미페이님 집에서 잘 먹고, 잘 자고.. 아침에 일어나보니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아이들과 옷입고 나오니 눈은 금새 그쳤다가 해가 났다가 다시 쏟아지기를 반복했다.

명이님 집 가까이에도 기차길이 있었다.

광주 송정역이 가깝다더니 정말로 우리집과는 달리 '진짜' 기차가 가끔씩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여섯살 연수, 네살 수민이.

두 가족의 큰 아이들이 어느새 이만큼 컸다.

기차가 지나가는 마을에 사는 이 아이들은 어느날 기차를 타고 찾아갔던 멀리 광주의 이모네와 

멀리 서울서 기차를 타고 찾아왔던 이모와 오빠와 동생을 기억할까.

마음안에도 기차길 같은 것이 있어서 그 길을 타고 서로에 대한 따뜻한 정들이 오고 가고, 오래오래 마음에 경적소리같은 그리운 여운들을 남길 수 있다면 좋겠다.

그게 아이들을 데리고 내가 기차를 타는 이유라면 이유겠다.










명이님네 아파트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많았다.

메타세콰이어같은 키큰 나무들 사이로 초록색 꼬마요정 하나가 아장아장 걸어간다. 

키큰 나무들 아래를 걷고 싶었던 나는 이 날 아침, 그런 나무들과 눈내린 나뭇잎위를 한참 걸으면서 오랫만에 마음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꼈다.

여행작가 오소희씨 말처럼 '그러므로 떠남은 언제나 옳다'.











연호야. 치치 여행 참 좋았지?

다정한 사람들에게로 떠났던 여행이라 더 좋았어.. 

오고가는 기차 안에서도 잘 놀고, 잘 자고, 먼길 씩씩하게 잘 다녀와준 우리 꼬마, 고맙다.

형아는 이미 엄마의 든든한 여행 친구이고, 이제는 세살 연호도 엄마의 여행 짝꿍이 될만큼 컸구나.

아가 동생이 태어나면 우리 같이 힘들고도 행복한 날들을 잘 살아낸 뒤에, 많이 큰 아가동생을 데리고 또 함께 떠나자.

연호가 좋아하는 치치도 타고, 아방방(버스)도 타고.. 작지만 튼튼한 우리들의 두 발로 걸어서 아름다운 세상, 좋은 사람들 곁으로 많이 많이 찾아가자.

너희들 덕분에 만삭이 가까운 엄마도 이렇게 즐거운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네. 힘도 많이 얻었고, 참 좋았다. 

고맙다, 고마워요. 













Posted by 연신내새댁
밥상2011. 11. 28. 23:32




 


비오는 토요일, 낮12시가 돼도 남편은 안 일어난다.
시계를 쳐다보다가 마음을 정했다.
"우리 먼저 먹자.. 아빠건 남겨놓고."

언제까지 자는지 한번 놔둬볼 참이었다. 
비도 오고 마침 맛있는 국수도 생겼고 밤새워 술마신 사람에게도 뜨끈한 국물 먹이면 좋을 것 같아 
점심메뉴는 국수로 정했는데 남편은 점심때까지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두 아이와 아침 일찍부터 복닥거린 나는 배가 딱 고팠다. 
부엌쪽으로 막 일어나 가려는데 안방에서 부시시한 얼굴로 남편이 걸어나왔다.
"몇 시나 됐어? 뭐야, 벌써 12시가 넘었네...?"
 
국수삶을 물을 가스렌지에 올렸다.
아이들과 아침먹으면서 미리 끓여두었던 멸치다시국물 냄비에도 불을 켰다.  
화르르...
불꽃이 일고 조금 있으니 물이 부글부글 끓는다.

문득 '사는 일이 뭘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울 때 뜨거운 국수 한그릇 내어놓는 일.
일주일 내내 기다리던 아빠가 드디어 일어난 것이 너무너무 반가운 연수가 아빠 등에 매달리고
미안하니까 괜시리 어제 술자리에서 사람들과 나눈 얘기를 궁금하지도 않은 나에게 큰 소리로 얘기하던 남편이
별대꾸없는 내 대신 아빠랑 눈맞추며 웃는 연호를 향해 고맙다는듯 벙글 웃는 한낮.
속상하고 서러운 마음이 국수거품처럼 화르르 끓어오르는 곳에 찬물 한바가지를 붓는다.
그리고 궁금했다.
뜨거운 국수 한 젓갈을 후후 불어 입에 넣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제 안의 여러 감정들을 다시 목구멍 속으로 삼켜 넣었을까.
시장통 국수집에 앉아 하얗게 김이 오르는 국수 한그릇을 들이키는 사람들.. 거기에는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깃들어있을까.










얼마전에 실버스푼에서 '태양에 말린 황룡시장표 국수'를 보내주셨다.
밤늦게 도착한 택배박스를 열자 푸른빛이 한가득 쏟아졌다.
'하늘과 계란'농장에서 키운 노지 브로콜리 네 개, 실버스푼 주인장의 아버님께서 지리산 골짜기에서 손수 키우신 커다랗고 커다란 양배추 한통..
아이들은 다 잠들고, 남편은 아직 퇴근하지않은 늦은 밤.
나는 현관에 앉아 그 푸르고 생기어린 것들을 쳐다보며 크게 소리내어 웃고 말았다.
시골에 친척이 살면 이런 기분일까.
남도의 땅기운과 바람기운을 잔뜩 받고 자란 먹거리들에 둘러싸여 나는 코끝이 찡할만큼 행복해졌다.

박스 제일 아래, 비닐포장까지 든든하게 여러겹 싼 그 속에 꼼꼼하게 풀을 붙인 빳빳한 종이봉투에 담긴 국수가 있었다.
이번엔 남도의 태양이구나.
잘 마른 굵은 국수가닥에서는 햇빛 냄새가 나는 듯했다.









함께 온 홍보물에서 제일 내 눈을 끈 것은 밀가루가 뽀얗게 앉은 하얀 팔뚝과 그 아래 붉은 손.
40년간 국수를 만들어온 손. 저 팔뚝에 감겼던 국수타래는 도대체 얼마나 될까.

손으로 직접 반죽을 하고, 기계에서 길게 뽑아져 나오는 국수가닥들을 직접 걸고 자르고 햇빛과 바람에 말려 포장하는 일까지 모두 사람의 손으로 해내는 재래시장의 국수.
멀리 전남 장성 황룡시장에서만 만드는 이 국수를 서울 강일동 끝자락의 내 집 부엌에 서서 편히 받아 끓여볼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맙고 신기하기만 하다.









끓이면서 익었나 보려고 한 가닥 건져먹어보았다.

맛있다...!

한가닥 또 건져먹고 또 건져먹었다.
국수 삶으면서 다 익기도 전에 이렇게 많이 건져먹어보긴 처음이다.
짭쪼롬하고 쫄깃한 맛.
이런게 손맛이구나... 싶다.









다 삶아진 면을 찬물에 헹궈서 그릇에 담고 생면 좋아하는 연수를 불러 한가닥 먹여주었다.

'엄마, 맛있어!'

맛있는거 알아보는데는 연수만한 녀석이 없다.

'그전에 먹던 국수보다 이게 더 맛있어!'

^^
그래. 엄마도 같은 생각이야.
연수는 국물을 넣지 않은 찬 면부터 한접시 뚝딱 해치웠다.









황룡시장표 국수 포장지에는 밀가루의 원산지 표시가 되어있다. '호주산, 미국산'
아쉬웠다.
이렇게 맛있는 국수가 우리밀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수입밀보다 우리밀이 더 맛있고 건강에 좋다는 것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제 자급률 1%에 도달한 우리밀. 수입밀보다 훨씬 비싼 우리밀로 재료를 바꿀 수 있는 여력이
안그래도 어려운 재래시장 국수공장에 과연 있을까..
말하면서도 조심스럽다. 하지만 전국에서 찾는 맛, 남도에서 국수 좀 먹는다는 사람들만 찾는다는 황룡시장 국수가
우리밀국수로 변화한다면 황룡시장 국수에게도, 우리밀 농업에도 서로를 살리는 정말 좋은 일이 되지 않을까.


쫄깃쫄깃 부드러운 황룡시장표 국수가 한 봉지 남았다.
이번 주말에 강릉내려갈 때 들고가서 국수 좋아하시는 친정엄마아부지께 한그릇 끓여드려야지.


+ 옛날방식. 태양건조 황룡시장표 국수를 구입하고 싶은 분들은 '010-9697-5420'으로 연락하시면 된다.
실버스푼에서도 가끔 판매하는데 회원들께는 그때그때 문자로 알린다.
(황룡시장 국수 '3일간' 팝니다..하고. 연락왔을때 바로 사는게좋다, 3일은 금방 가므로 어물쩡하다가는 놓치고말리~^^;)
 


 

 







 ++ 명이 이모와 미페이 삼촌께


양배추 잎사귀가 정말 컸어요. 연수가 '우산이다~!'하면서 집안에서 쓰고 뛰어다녔지요.
겉잎 두 세장을 떼고보니 속잎에 고치 하나가 매달려있었어요.
어느 나비 애벌레의 고치일 것 같았지요.
연수불러 구경시켜주고, 더이상 잎을 뜯지 못하고 겉잎 다시 덮어 한동안 부엌 베란다에 놔두었습니다.
연수는 매일 한번씩 고치가 어찌됐나 보자고 했지요.
'엄마, 오늘쯤엔 나비가 됐을 것 같은데?' 하면서요.

연호 이유식 국물내려고 양배추 잎을 조금 더 뜯었습니다.
고치붙은 잎사귀는 다른 겉잎들과 함께 잘 포개서 따로 종이상자에 담아 베란다에 두었고요.
어찌해야할지 고민이랍니다. 어떻게든 고치가 나비로 커서 날아가도록 해주고 싶은데 말예요.
공기나쁜 서울에서 제 고향 지리산을 그리워할게 안쓰럽기도 하지만
우리집까지 온 생명인데 슥 버리게 잘 안되더라구요.
연수가 매일 잘 들여다보고 있으니 연수랑 의논해서 좋은 방법을 찾아봐야겠어요.

브로콜리도 너무 맛있었어요.
다른 야채들이랑 같이 들기름넣고 살짝 볶아서 야채볶음 한것도 잘 먹고, 케챱넣고 만든 브로콜리햄케찹볶음밥도 연수가 참 잘 먹었어요. 고소하기도 하고 부드럽게 씹히는 것이 일반 브로콜리하고는 다른 노지 브로콜리만의 생생한 맛인 듯해 좋은 먹거리 맛보게 해준 두 분께 고마운 마음이 그득했답니다. 하늘과 계란 농장은 무엇이든 참 건강하게 키워내시는군요. 양배추랑 같이 연호 이유식에도 잘 넣어 먹일께요. 

고마워요.
앞에도 썼듯이 늦은 밤. 하루의 고단함을 잊을만큼 신나게 웃었어요.
꺼내도 꺼내도 자꾸 나오는 푸른 것들 앞에서 시들어가던 마음도 일순간 푸르게 살아나는 것 같았어요.
고마워요.


Posted by 연신내새댁
밥상2011. 11. 22. 22:17








'실버스푼'(http://sspoon.kr)이라는 온라인 식품쇼핑몰이 있다.

독이 든 음식에 넣으면 색깔이 변한다는 은수저처럼 
우리 아이들 밥상에 안심하고 먹을 수 있을 안전한 먹거리를 올려주겠다는 마음으로 
젊은 두 부부가 쿵짝쿵짝 열심히 운영하는 쇼핑몰이다.

나로 말하자면, 이 부부가 전국을 뒤지며 발품팔아 찾아낸 맛좋고 마음좋은 먹거리들을 함께 맛보고 
이 부부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기로 한 '평가단'이다.
이런 평가단이 나말고도 몇분 더 계신 것으로 아는데 아마도 그 분들은 맛이나 먹거리 안전성 전반에 대해 전문적인 식견을 갖추신 분들일게 틀림없다.
나는 순전히 개인적인 친분으로 평가단이 되었다. ㅎㅎ

부부가 결혼하기 전부터, 아니 블로그에서 처음 만나 알콩달콩 연애감정을 키워가던 시절부터 
멋모르고 두 사람 모두와 친하게 지낸 블로그이웃이었던 덕분이다.
어느날 '똑순이 보고싶다'며 그 중 한명이 우리집에 놀러오기로 했었는데
다른 한명이 깜짝게스트로 함께 온 것을 보고서도 그저 놀라고 반가워하기만 했을뿐 둘의 연애는 상상하지도 못할만큼 눈치없는 이웃이기도 했다. ^^

내 첫 블로그 이웃이었던 두 사람이 결혼해 한가정을 꾸리고 어느새 두 아이의 엄마아빠가 되었다.
'실버스푼'이라는 듬직하고 고마운 먹거리 쇼핑몰이 대박나길 기원한다.
특별한 감식안은 없지만 적어도 유해식품에 대해서는 신통하리만치 바로바로 반응하는 '불량 몸'을 갖고 있으니
그 장점이라도 살려 이 집 음식평가를 해봐야겠다. 
앞으로 가끔 올라올 새댁의 실버스푼 음식평가를 기대해주세욤! ^^









첫번째 먹거리는 쉬운 말로 '소세지'.
음.. 포장지에 써있는 제품명은 '버섯불고기맛 부어스트'다. ^^

'무발색제 무전분 무유해색소'란 문구가 눈에 띈다.
먹어보면 알 수 있다. 
내 몸은 시중 햄, 소세지, 라면 등에 아주 신통하게 반응한다.  
유해한 식품첨가물이 들어있는 이들 음식을 먹으면 속이 울렁거리고 배가 싸르르 아프고 얼굴에 빨간 뾰루지가 올록볼록 올라온다.ㅠㅠ
너무 먹고싶어서 어쩌다 먹은 뒤에는 속이 안좋아 늘 후회한다.
그래서 유기농 친환경 먹거리를 찾아 먹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나의 아픔이자 고마움이다.









소세지를 쪄보았다. 
뜨거운 김으로 십분정도 쪘더니 겉면의 비닐이 살짝 벗겨져있다.
맛은... 음~~ 좋다. 
버섯향이 강하다. 평소에 먹던 한살림 소세지보다 양념소스맛이 좀 진하다. 나는 살짝 담백한 맛이 더 좋은데...










연수는 아주 좋아했다. (젓가락에 끼워서 꼭 저렇게 꼬치로 먹어야한다;;)
다 먹고 나자 '버섯맛 소세지는 또 없냐?'고 종종 물어본다. 
짭조롬해서 밥반찬으로 좋고 그냥 간식용으로도 좋겠다.

실버스푼의 먹거리들은 아무때나 살 수가 없다.
항생제쓰지않고, 좁은 축사안에 가둬두는 것이 아니라 넓은 마당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제 속도대로 천천히 즐겁게 자란 돼지를 한마리 잡는다.
그러면 실버스푼에 가입한 회원들에게 문자가 온다. 
'돈까스 팝니다' 
보통 3일쯤 판다. 얼른 사이트에 접속해서 신청하지 않으면 못 산다.ㅠ

그리고 이제는 이런 문자도 올 것이다. '소세지 팝니다'
돈까스만들고 남는 돼지고기로 유해한 식품첨가물들은 일절 빼고 
정직하고 맛있게 만든 소세지를 이제 냉동실에 재워놓고 먹을 수 있겠다.
(이 소세지가 만들어지기까지 주인장이 발품판 사연도 쇼핑몰 블로그에서 읽어볼 수 있다)

대량생산으로는 절대 맛도, 안전성도 지키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값싸고 맛좋은' 대량생산 대신 값은 좀 비싸더라도 '맛좋고 안전한' 소량생산을 택한 실버스푼.
실버스푼의 노력이 꿋꿋하게 좋은 식품을 만들어내려고 애쓰는 생산자들께 안정적인 판로도 마련해드리고,
우리 소비자들에게도 믿고 먹을수있는 든든한 식품창구가 돼 줄 거라 믿는다. 화이팅, 화이팅! ^^ 









주홍빛 도는 소세지는 '파프리카부라스트부어스트'. 
청량고추가 들어있어 맵다. 맵다. 내 입맛에는 좀 많이 맵다. 
어른들 술안주 용으로 좋을 것 같다. 처음에는 넘 매워 잘 못먹겠더니 두번째 먹을때는 익숙해져서 밥반찬으로 꿀떡꿀떡 잘 먹었다. 

이 소세지들을 먹고는 내 속이 괜찮은걸보니 역시 안전한가보다.
'원재료 및 함량'을 읽어보면... 짧다. ^^; 시중 소세지와 비교해보면 빠져있는 어려가지 유해식품첨가물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요건, 오늘 소세지 평가 포스팅에서 살짝 빗겨나가지만... '실버스푼'의 대표메뉴 중 하나인 '통치즈 돈까스'.
이거 정말 맛있어서 판다는 문자오면 얼른 가서 주문해 냉동실에 재어놓고 먹는 귀한 먹거리다.
가끔 연수 반찬 만들기 어려울 때, 손님 오셨을 때 간편하게 내놓으면 인기만점! ^^
한 번 먹어본 사람은 잊을 수 없는 그 맛~. 
실버스푼 돈까스를 알게된 후로 우린 외식으로 돈까스는 안 먹는다. 집에서 구워먹는게 훨 맛있으므로! ㅎㅎ


이 포스팅을 하기 전에 한미FTA가 통과되었다는 소식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잘못된 협정.. 되돌리기위해 어렵고 긴 과정을 거쳐야하겠지..
그 사이에 우리 농업과 농민들도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겠고, 소비자들도 위험에 처하긴 마찬가지다.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생협에도, 또 좋은 우리 먹거리를 살리고 지키려고 애쓰는 실버스푼 같은 이웃들이 있으니까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추운 날들.. 뜨끈한 밥 든든히 챙겨먹고.. 또 힘내서 살아야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