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이백'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3.03.05 바다를 낳았다 24
  2. 2011.06.09 오늘도 걷는다 15
  3. 2011.05.20 꽃이 핀다 8
umma! 자란다2013. 3. 5. 00:32

폭풍같은 출산이었다.
바다의 예정일이었던 3월 3일 새벽, 저녁부터 조금씩 심해지던 진통이 한밤중에 출혈까지 조금씩 생기자 잠든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병원에 도착한 것이 새벽 2시.

진통을 참아가며 연호를 다시 안아 우리 방안에 재우고 난 후인 3시쯤부터 본격적인 진통을 시작해서 2시간 반만인 새벽 5시 45분에 바다는 세상에 태어났다.

병원에 도착한 후 자지 않고 진통하는 엄마 곁에서 아빠와 함께 있던 연수는 어린 동생이 태어나는 모든 순간을 즐겁게, 신기하게 지켜보고 아빠와 함께 바다의 탯줄을 잘랐다. 


세 아이를 임신해서 세상에 내어놓고 키우고 있지만 출산은 이번이 처음인 나로서는 정말로 신비롭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바다는 엄마의 바램을 모두 들어주었다.
아빠가 함께 있는 휴일에, 작은 형아가 잠든 새벽에, 진통을 너무 오래 하지 않고.. 건강하고 평화롭게 잘 만났으면... 했던 엄마의 바램을 모두 알고 있다는 듯이, 모두 들어줄 수 있다는 듯이
그렇게 제 힘으로 엄마의 몸을 통과해 미끄러지듯 세상으로 나왔다.









바다가 태어나던 그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김옥진 선생님의 '이제 아기 머리가 나올거야, 연수야, 잘 보렴~.' 하시던 밝고 다정한 목소리,
뭉클 하고 빠져나오던 작은 공같은 양막의 느낌, 곧이어 양막이 작게 팍! 하면서 터지고 바다의 머리와 몸이 쑥 빠져나오던 느낌...!
몸이 기억하는 느낌이란 놀라운 것이다.
지금도 바다가 내 몸에서 빠져나오던 그 순간의 여러 느낌이 생생하다.
그 느낌들을 느껴볼 수 있었다는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고맙고, 행복한 일이었다.
살아가는 내내 두고두고.. 이 날을, 이 느낌들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바다는 엄마에게 제가 줄 수 있는 제일로 큰 선물을 해주며 세상에 왔다.
고맙고 고마운 내 작은 아기. 나의 세번째 아기.








둔위(역아)로 있어 임신 39주에 제왕절개 수술로 첫아이 연수를 낳았을 때, 

나는 마취에서 깨어난 후 처음으로 젖을 물린 어린 연수가 내 젖꼭지를 꼭 새처럼 콕콕콕 빨았던 느낌을 기억하고 있다.
그 느낌이 참 뭉클해서 수술로 힘들었던 몸을 겨우겨우 일으켜가며 연수에게 젖을 물리며 내 엄마로서의 삶이 시작되었었다.
둘째 연호를 낳았을 때는 브이백(제왕절개후 자연출산)을 시도하다가 다시 한번 또 수술을 거친 것이 슬펐지만
유도분만 도중에 심박동이 많이 불안해졌었던 연호가 다행히 큰탈없이 건강하게 잘 태어나 준것만으로도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어서
다른 생각않고 그저 고맙게 수술 후의 힘든 시간들을 견뎌냈다.
네 살이었던 연수가 엄마와 함께 병원의 작은 방에서 일주일을 보내면서도 씩씩하고 밝게 지내주어서 첫 수술때보다는 그 일주일이 훨씬 수월하게 느껴졌었다.
그래도 역시 수술의 기억은 몸과 마음 모두에 오래도록 괴롭게 남을만큼 힘든 일이었다.

내 몸과 마음이 힘든 것도 힘든 것이지만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을 임신했을 때, 그리고 그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나고 자라는 동안 내가 아이들에게 제일 해주고 싶었던 것은
기다려주는 일이었다.
떄가 될 때까지, 아이가 스스로 하고 싶어하고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일.
부모로서 나는 그 일이 제일로 중요하고,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지켜주고 싶은 일이었다.
아마도 첫아이 연수를 기다려주지 못하고 둔위라는 이유로 예정일보다 훨씬 일찍 세상에 나오게 하면서, 그리고 그 후에 연수를 키우면서 이런저런 힘든 성장통을 겪을 떄마다 그 생각을 다지게 되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준비가 되었을 때, 제 힘으로 힘껏 세상의 문을 열고 나오게 해주고 싶었고
자라면서 하나씩 해나가야할 독립의 일들도 등 떠밀리거나, 다그쳐지거나, 제가 해낼 기회도 빼앗긴채 다른 누구의 손에 의해 강제로 해지지 않고
조금 늦더라도, 어렵더라도 제 힘으로 하나씩 해나가면서 세상에 당당히 제 발로 서게 되기를 바랬다.
출산은 그 시작이었다.

바다가 그렇게 태어나주어서 너무 고맙고 정말 기쁘다.
앞으로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우리는 함께 잘 해내나갈 수 있을거라는 용기가 생겼다.








하고싶은 얘기가 정말 많은데 아직 정리가 잘 안된다.
그래도 내일 연앤네이쳐를 떠나기 전에 오늘밤, 너무 고마웠던 이 공간에서 이 글을 남겨놓고 싶었다.
두 아이 제왕절개 후 브이백이라는 참 어렵고 힘든 일이었던 내 출산을 받아주고 긍정적으로 늘 용기를 주셨던 박지원 선생님과
폭풍같은 출산의 순간에 정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셨던 김옥진, 박길순 조산사선생님,
그리고 늘 병원을 떠들썩하게 만들던 장난꾸러기 두 형아를 따뜻하게 반겨주셨던 간호사 선생님들과 연앤네이쳐의 여러 식구들께 정말로 너무너무 감사하다.
이 분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바다는 이렇게 행복한 출산을 해볼 수 없었을 것이다.
평생 간직할 잊지못할 감동, 그 순간을 경험해볼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것이다.
걱정하시면서도 다 잘 될거라고 밝게 격려해주시고, 또 차분하게 응급상황들도 미리 준비해주셨던 박지원 선생님.. 잊지 못할 것이다.
김재영 선생님께 진료받았을 때 들었던 말씀도 잊을 수 없다.
'동의보감에도 이런 얘기가 있어요... 난산이라고 하는 것은 부잣집에나 있는 것이지 평민들의 가정에는 난산이 없다고요..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 그렇게 출산에 도움이 되요. 방바닥 걸레질하고 빨래하는 우리 어머니들 그 자세 있잖아요.. 그 자세가 제일 좋아요'
그 말씀이 잘 잊히지 않아서 그 뒤로 집에 돌아와 방바닥을 정말 열심히 닦았다.
아이들 키우며 살림한지 벌써 6년차지만 요 최근 한달여처럼 내가 우리집 방바닥을 구석구석 자주 닦아본 적이 없었다.
연앤네이쳐를 통해 알게된 플라잉요가를 주말에 했던 일은 두 아이키우며 잠시도 내 시간 갖기가 어려웠던 나에게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깊이 위로받고 풀어줄 수 있는 고마운 시간이었다.
박지원선생님이 권해주신 '히프노버딩' 책도 출산 준비하면서 마음에 참 큰 힘이 되었다.

남편도 나도 이번 출산을 통해 정말 많이 느끼고.. 또 배웠다.
우리가 부부로서, 세 생명을 세상에 내어놓고 함께 키우는 부모로서 정말로 한 걸음 더 깊게 성숙해지는 시간이 되었다.
천천히... 잘 새기고 정리하면서 우리 가족 모두를 새롭게 태어나게 해준 바다와 함께
잘 성장해가야겠다.


바다의 출산이 가까워오면서 응원해주고 격려해주었던 여러 이웃들, 마음으로 따뜻한 기운을 보내주었던 모든 친구들...

그 모든 분들 덕분에 바다도 나도 건강하게 출산할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모두들...
정말로 고맙습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1. 6. 9. 00:03



'오늘도 걷는다-마아-는 정처어-없는 이 바-아알--길...'

요며칠 내가 해온 가장 중요한 일과는 걷는 것이다.
아침먹고 집을 좀 치우고나면 모자와 가방을 준비해서 연수와 길을 나선다.

"엄마 오늘은 우리 어디가?"
"글쎄... 한살림 가게에 갈까? 아님 성당 뒷산에 갈까?"

성당 뒷산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연수는 뱀딸기를 따는 일에 열중했다.
빨갛게 잘 익은 뱀딸기를 먹어보기도 하고, 왜 뱀딸기인지 궁금해하기도 하다가
벌레들 먹으라고 뱀딸기를 따서 여기저기 숲길에 던져주는 놀이를 내내 즐거워했다.
그러다 처음 가보는 길로 내려서니 오래된 배드민턴장이 나와서 거기서 누가 버리고간 깃털빠진 배드민턴공을 던지며 또 한참을 둘이 신나게 놀았다. 

오전산책에서 돌아와 점심을 먹고 낮잠을 한숨 자고 일어나면 또 오후산책을 나갔다. 
날씨가 다행히 매일 좋았고, 내 어린 동행은 고맙게도 햇볕속을 걷고 뛰고 흙과 물과 풀숲에서 노는 일을 참으로 좋아했다.  
우리집 근처에는 아이와 차걱정않고 천천히 걸을만한 산책로, 숲길이 많은 것도 다행이었다.
 
딱히 갈 곳이 정해져있지 않은 우리는 발길이 닿는데로 동네를 무작정 쏘다니기도 했다.
동사무소에 갔다가 강일도서관 어린이열람실에서 한참 그림책을 읽다 나오기도 하고,
더운 날에는 커피 가게에 들어가 엄마는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한잔 마시고, 연수는 쥬스와 빵을 먹고 나오기도 했다.











이곳저곳 놀이터에서 오래오래 놀았고,
뭔가 평화 출산전에 준비해둘 것이 생각나면 연수를 유모차에 태우고 고덕역까지 걸어가서 한살림 매장이나 여러 다른 매장에서 물건을 사오기도 했다.

만삭의 애기엄마가 큰 아이를 앞세우고, 혹은 유모차에 태우고 걸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젊은 아주머니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본인이 숨이 차다는듯 안타까워하시기도 하고,
노점에서 떡이나 물건이라도 하나 살라치면 할머니들은 어김없이 "아들이지? 얘 동생이~"하고 평화의 성별을 딱딱 맞추셔서 나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우리와 잠시 얘기를 나누게 돼는 가게 아주머니들이 한결같이 "인제 동생 곧 태어나겠네~ 너는 좋겠다! ^^"하고 연수에게 다정히 얘기해주셔서 나도, 연수도 더 설레고 기뻐지기도 했다. 

'아니, 이 산이 지난 봄에 흰 벚꽃잎이 비처럼 날리던 그 산이 맞나'싶게 나뭇잎과 풀이 무성하다못해 검푸러진 산을 보며 깜작 놀라기도 하고,
놀이터에서 만난 초등학생쯤 돼보이는 누나에게서 뜬금없이 "우리 엄마아빠는 다 (밤)열한시에 오시는데.."하는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파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근데 아줌마.. 임신하셨어요?" ^^; 
이 질문은 놀이터에서 연수와 놀고있는 내게 참으로 많은 형아누나들이 했던 질문이다.  

















보통은 연수와 나, 둘이 걸었지만 지난 연휴에는 아빠도 함께 걸었다.
햇볕이 제일 뜨거웠던 일요일, 늘 차를 타고가던 우리 텃밭에 그 날은 세 식구가 걸어서 가보았다.
거리는 5킬로 남짓해서 그리 멀지 않았지만 아침을 느지막히 먹고 세 식구가 걷다 꽃구경하다 하며 천천히 걸어가다보니 한낮의 제일 뜨거운 땡볕 아래를 걷게 되었다.

신영복선생님 서화중에 '자동차로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에게 1m의 코스모스 꽃길은 한 개의 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이 가을을 남김없이 담을 수 있는 아름다운 꽃길이 됩니다'라는 글귀가 있는데
가래여울 텃밭에 걸어가며 내가 느낀 것이 딱 그랬다.
차를 타고 지나갈 때는 10여분 남짓한 시간동안 그저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아파트단지와 하우스 풍경일 뿐이었는데
천천히 그 길을 걸어보니 하우스 안에는 호박과 오이가 주렁주렁 달려있고, 토마토가 가득 실려있는 수레.. 산호수라는 예쁜 화분만 전문적으로 키우는 농장 등 눈에 들어오는 장면들이 모두 그렇게 신기하고 예쁠 수가 없었다.











6월의 장미 향기도 마음껏 맡을 수 있었다.
장미 향기는 저녁 무렵이 더 진해서 연수와 둘이 나선 오후 산책이 길어져서 저녁 어스름이 깔린 뒤에 집으로 돌아올 때면
오래된 아파트 단지의 담장에서 풍겨오는 그 진한 장미향기들에 참 행복해지곤 했다.

시원한 초여름의 밤공기속을 장미향기를 맡으며 걷고 있노라면
가본 적 없는 낯선 시공간- 오래전에 읽어 이제는 그 내용도 어렴풋한, 릴케나 하이네 같은 독일 작가들의 작품속에 나오는 그런 초여름 저녁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작은 아파트 단지 안을 빙빙 돌던 어느 날에는 놀이터 옆에서 한 고등학생 누나가 데리고나온 토끼를 만나기도 했다.
연수는 토끼옆을 오래도록 지키고 앉아서 제가 뜯은 풀을 토끼에게 먹여주고, 그 보드라운 털을 자꾸 만져보았다.
그 날 저녁, 결국 돌담 어디선가 떨어져 울음 끝에 엄마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오면서 연수는 토끼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늘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하던 아이여서 '토끼를 키울까, 고양이를 키울까'하고 아빠가 물었더니 "토끼 키울꺼야." 해놓고는 뒷말을 덧붙였다. "지금은 네 살이니까 토끼를 키우고, 다섯살에는 고양이를 키울꺼야.. 여섯살에는 강아지도 키울꺼야."
아빠가 웃으며 "우리집이 농장이 되겠네..'했더니 "응. 토끼가 먹을 수 있게 풀도 키울꺼야" 했다. ^^












하루 시간의 대부분을 걷는 일에 쓰다 보니 요즘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로 할 일이 없는 사람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걷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곧 예정일이 다가오는 평화의 순산을 위해서다. 
배속에 품고있는 생명이 제 힘으로 세상을 열고 잘 나올 수 있도록, 나도 건강하게 이 아이와 만나기 위해 공을 들여 하고 있는 준비이다. 
그래서 걷는 것인데, 막상 매일 아침 일어나 '오늘은 어디로 걸어가볼까' 하고 생각할 때는 
내게 세상에서 제일 중한 일이 '걷는 일' 밖에 없는 그런 한가롭고도 할일없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아 웃음도 나고 살짝 당황스럽기도 하다. 
내 나름대로는 절박한 이유가 있다고는 하지만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지금 당장 꼭 해야할 다른 급한 일은 아무 것도 없는..
그저 네살배기 큰 아이의 손을 잡고, 혹은 그 애의 빠르고 가벼운 발걸음에 이끌리듯 의지해 무거운 몸을 천천히 움직이며 걷는 것 외에 다른 일은 아무 것도 할 생각을 않고
선물처럼 주어진 이 하루하루를 눈부신 초록으로 가득찬 세상속을 걸어다니는데만 쓰고 있는 것이다. 
 서른넷, 초여름의 내 인생에는 그런 한 때도 있었던 것이다...^^ 



평화를 기다리면서 자꾸만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브이백(제왕절개 후 자연분만)을 하고싶어하는 임산부로서 
촉진제를 쓰지않고 정말 온전히 아이의 뜻, 아이와 나의 힘만으로 자연스럽게 출산을 해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보니
아이가 조금이라도 작을 때, 예정일보다 일찍 진통이 오기를 내심 많이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아 오늘도 안 나왔네..'하며 지친 몸으로 고단한 잠에 빠져드는 며칠을 보내다 
문득 내가 중요한걸 잊고 있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내가 제일 하고싶었던 것은 평화가 스스로 나오겠다고, 나올 준비가 되었다고 신호를 보낼때까지 기다리는 일이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걸 기다려주지 못한 것이 연수를 낳고나서 제일 안타깝고 미안했던 일이었고, 그래서 평화는 꼭 기다려주고 싶었다.
그러니.. 나에게 중요한건 수술이냐, 자연분만이냐 보다는 진통이 올 때까지, 아이가 준비되었다고 할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느냐 없느냐 이다.
기다려주고 싶었던 것이니...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자.
더 늦어져도, 언제가 되어도.. 예정일이라는 것도 하나의 수치일뿐 내 아이가 준비되는 것은 저 나름의 때가 있을 것이다.

연수와 평화는 예정일도 6월 10일로 같다.
3년전에 나는 역아로 있던 연수를 예정일보다 1주일 앞선 6월 3일에 수술로 낳았다. 
6월 3일부터 6월 10일까지의 7일은 그래서 내가 살아보지 못했던 7일이다. 
나이가 더 들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예정일을 앞둔 마지막 일주일의 몸은 참 무겁다. 
연수때는 이만큼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누우면 온 몸이 뻐근하고 아파서 '아구구~'하는 신음이 절로 터진다. 

처음 겪어보는 마지막 7일, 혹은 그 이상의 날들이 된다해도 나는 잘 견디고 싶다. 고맙게 기다리고 견뎌야지...
내 몸안에 작고도 온전한 생명을, 하나의 세계를 품고있는 신비한 느낌, 뻐근하고도 묵직한 이 감동을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하루 더 걸을 수 있다면 그만큼의 햇살과 푸른 잎사귀와 꽃향기가 내게 주어진 것을 고마워하면서, 
하루 더 놀이터 그네에 올라탄 연수의 보드라운 등을 오래도록 힘껏 밀어줄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면서.



앞으로는 될 수 있는한 걸어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이번에 걸어보니 어지간한 거리는 다 걸어다닐만 하고, 걸어가는 것이 참 좋았다. 
풍경과 사람들이 길을 따라 내 속으로 들어온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연휴동안 세식구가 유모차를 밀며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길을 걷다가 고개를 들어 고속도로나 큰 도로를 보면 어김없이 차들이 꽉 막힌 도로위에서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었다. 
우리도 그 행렬속에서 답답해하던 많은 순간들이 떠올랐고, 지금 우리가 걷고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고맙고 다행스러웠다. 
그래서 걸어야겠다고, 이제는 곧 평화까지 네 식구가 되겠지만 최대한 많이 걸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아빠와 연수가 노는 동안 혼자 오래오래 걷은 적도 있는데 근래에 드물게 마음이 고요해지고 짜증스럽고 답답하던 마음속이 천천히 정리되는 경험도 했다.  뭔가 속상한 일이 있어 씩씩거리며 걷기 시작해도 한참 걷다보면, 그런 후에 잠시 앉아 바람을 쐬며 땀을 식히고 있으면 속상했던 것들이 스르르 풀리기도 했다. 
걷는 동안 그런 변화가 가능헀다. 

걷기를 재발견하게 해준 이 시간들까지 평화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겠다. 
평화야, 고맙다.. 
고맙다.
사랑해.  
^^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1. 5. 20. 19:04









우리집 치자화분에 처음으로 꽃이 피었다.
작년 봄인가 여름에 갈현동 골목에서 미용실앞에 놓고 팔던 작은 치자화분을 사오면서 '아 이 나무에 꽃이 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다.
미용실 아주머니가 줄기끝에 매달린 초록순들을 가리키며 이게 다 꽃이 될거라고 하셔서 기대는 더 컸다.
하지만 작년에는 치자꽃을 결국 보지 못했다.
동글하게 뭉쳐있던 초록순들은 그대로 펴져서 잎이 되었을뿐 꽃봉오리는 생기지 않았다.
15층에 살아서였는지도 모른다.
10층 이상의 고층아파트에서는 화분들도 어쩐지 잘 못 자란다고.. 화초도 사람도 땅기운에서 너무 멀어지면 힘이 없어지는 모양이라는 어느 이웃분의 말씀도 있으니 말이다.
4층인 지금 집으로 이사와서 맞은 첫 봄.. 치자는 다시 몽글한 초록순을 여러개 피워올렸다. 
나는 저기서 꽃이 필까.. 아니면 다시 잎만 자랄까 궁금해하며 연수와 그 이야기를 여러번 나누었었다.  











그런데 보름, 아니 한달쯤 전이었을까... 연수가 '엄마 꽃봉오리가 생겼어!'하고 말해주어서 자세히 보니
정말 여지껏 보지 못했던 둥글고 뾰족한, 틀림없이 꽃이 될것같은 연두색 봉오리가 솟아나 있었다.
'여기도 있다, 여기도 있다!'하면서 연수가 세어보니 세 개였다. 며칠 뒤에 잎사귀 뒤에 숨어있던 것을 하나 더 찾아서 꽃봉오리는 모두 4개였다.

치자화분을 둔 안방 베란다는 햇볕이 한나절 아주 잘 든다.
빨래건조대도 있고 예전에 연수가 쓰던 아기흔들의자도 있고 작은 나무탁자와 의자도 하나 있다.
연수는 아기의자를 비행기라고 부르며 거기 앉아 조종하기를 좋아한다.
오며가며 치자꽃이 피었나도 자주 살피고 내게 봉오리가 흰색으로 변했다고 알려주기도 했다.

그러다 드디어 꽃이 핀 것을 알게된 것은 며칠전, 아침에 일어나 안방과 베란다 사이에 있는 유리문을 열었을 때였다.
향기가... 향기가 먼저 우리를 찾아왔다.
'이게 무슨 향기지? 무슨 향기가 이렇게 좋지..?'
처음에는 빨래에서 나는 섬유유연제 냄새인가 했다. 그러다가 그동안에도 늘 같은 세제로 같은 빨래를 널어왔는데 이렇게 좋은 향기는 못 맡았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한나절만에야 치자화분을 들여다보았다. 

거기, 하얀 꽃이 벙그렇게 두 송이나 피어있었다. 
하얀 꽃잎이, 큰 꽃송이가, 아찔할만큼 향긋한 꽃향기가... 비현실적이다 싶을만큼 아름다웠다. 
"연수야, 치자꽃이 피었어~!" 
둘이 같이 들여다보고 향기도 맡고 사진도 찍어가며 꽃 옆을 한참동안 떠나지 못했다. 가슴이 살짝 벅찼다. 연수와 함께 이 꽃향기를 맡을 수 있어서 더 기쁘고 행복했다. 

이 치자화분을 사들고 갈현동 골목을 올라오며 '연수야, 엄마는 예전부터 치자를 키워보고 싶었어. 이 나무에서는 하얀 꽃이 핀단다. 꽃이 피면 향기가 무척 좋아! 우리 같이 잘 키워보자~' 하고 얘기하던 저녁..
아마 세 식구가 모처럼 동네 돼지갈비집에서 외식을 하고 술렁술렁 걸어돌아오던 주말 저녁이었을 것이다.
그때만해도 지금보다 훨씬 어렸던 연수가 '하얀꽃이 피어?'하고 묻고는 그 다음날부터 베란다에 둔 치자화분을 볼때마다 '엄마 꽃은 언제 피어?'하고 물었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꽃이 드디어 피었다. 우리집에 온지 일년여만에 처음으로 꽃을 피워주었다.

꽃봉오리가 부푼것을 보고 나는 '평화가 태어나기 전에 꽃이 피어주었으면...'하고 바랬다. 
평화에게 꽃향기를 맡게 해주고 싶기도 했고, 오래 기다렸던 꽃이 피는 것 자체가 곧 우리집에 태어날 아기를 위한 선물을 받는 기분일 것 같았다.
치자는 내 바램을 들어주었다. 꽃향기를 맡으며 아기를 기다릴 수 있어서 참 좋다.. 참 고맙다.

정갈한 느낌의 하얀 꽃, 생각보다 단단한 꽃잎..
은은한 치자향기가 안방에 가득한 요며칠, 꽃이 있는 생활이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깊이 느끼고 있다. 










치자 옆에 있는 이 작은 나무는 '백정화'라는 꽃나무다.
이 나무에도 꽃이 피었다. 푸른 잎사귀들과 함께 가지에 꼭 잎사귀처럼 돋아오르는 하얀 잎들이 꽃잎이다.
저것이 백정화 꽃이라는 것은 나도 올해 처음 알았다.

이 나무는 신랑과 연애하던 시절에 산울림소극장 옆에 있는 작은 꽃집에서 내가 신랑에게 사달라고 해서 선물받은 것이다. 그전에 선물받았던 화분이 오래 살지 못하고 죽은 것이 미안해서 하나 더 사달라고 하고 내가 직접 골랐다.
신랑은 그때 '또 죽으면 더 속상할테니 화분은 그만 사지..'했지만 나는 잘 살려보겠다고 꼭 사달라 졸라서 선물받았다.
그런데 근 4년이 흐르는동안 백정화는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겼다. 흰꽃이 핀다고 했는데 그도 피지 않았다.
나는 내심 '나는 꽃화분은 잘 못키우나봐..ㅠㅠ'하고 좌절하기도 했다.
푸른 잎만 자라는 화분들은 그럭저럭 몇가지 신혼집에서 잘 키웠지만 꽃화분들은 늘 힘도 없고 겨우겨우 숨만 붙어있었다.

그런데 이집으로 이사오고나서 햇볕을 잘 쬐더니 백정화도 전보다 훨씬 생생하게 잘 살아났다.
여린 새잎도 많이 돋았고, 드디어 어느날에는 하얀잎들이 아주 무성하게 자라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아 이게 꽃이구나!'하고 알았다.
그전에도 이런 잎이 한두이파리 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내가 꽃일거라는 생각을 못했을 정도로 작고 힘이 없었다. 

올봄에는 백정화도 튼튼한 꽃을 오래오래 피워주고, 치자꽃까지 피어서 작은 우리집 베란다 꽃밭이 풍성하다. 
작은 화분 두 개에 몇 송이 안되는 꽃들이지만 내게는 어느 넓은 꽃밭 안부러운 고맙고, 황홀한 꽃밭이다. 
고맙다.. 고맙다. 
큰 아이가 잘 자라고, 곧 둘째아이가 태어나는 우리집에 피어준 꽃.. 눈을 들면 예쁜 아이와 예쁜 꽃이 보이는 삶.
그렇게 살 수 있게 해줘서 정말 고맙다.











연수는 노는 짬짬히 달려와서 꽃보다가 달팽이보다가 한다. 
작은 집안에 흙을 넣어줄때는 달팽이가 붙어있는 상추잎을 큰 그릇에 옮겨놓았었는데 
거실 베란다로 흙담으러가는 엄마 등뒤에 대고 "엄마, 연수는 달팽이 보고 있을께~. 달팽이 잘 있나 보고 있을께~!"하고 소리쳤다. 
작은 집안에서도 어딜가든 엄마 따라오던 녀석이 엄마와 잠깐 떨어지더라도 저는 달팽이 곁을 지켜줘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연수는 눈도 떼지않고, 말도 걸어가며 달팽이 곁을 참 든든하게 지켜주었다. 
   
 









연수는 달팽이 단단한 등껍질이 만져보고 싶어서 랩에 뚫어놓은 공기구멍으로 곧잘 손을 넣는다. 
이번 주말에 텃밭갈때 다시 데려다주기로 했는데 연수, 잘 헤어질 수 있겠지..
달팽이 엄마아빠랑 친구들이 달팽이를 기다릴지도 모르고, 먹을 것도 많고.. 아무래도 우리집보다는 원래 살던 텃밭이 달팽이에게는 더 좋을꺼야.. 제 고향이 그리울거야. 우리집에 와서 일주일동안 잘 지내주었으니 '고마워~' 인사하고 돌려보내주자.. 했더니 "응, 그러자~" 한다. 












엄마가 치자사진을 찍으니 저도 찍는단다. 이제 엄마의 작은 디카는 연수가 제법 능숙하게 다룬다.
만 36개월이 다되어가는 연수는 요즘 또 부쩍 많이 큰 것 같다.
말도 전보다 훨씬 능숙하게 하고, 질문을 받아도 당황하지않고 제 나름대로 떠오른 생각을 다 말하는 것이 신기하다.
떼도 많이 줄었다. 함께 길을 가면서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리지 않고 엄마와 제법 속도를 맞춰 잘 가준다.
여기저기 궁금한 것 다 둘러보고, 비둘기도 쫓아가고, 땅바닥에 떨어진 신기한 것들을 줍는 것이야 여전하지만
어린아이가 그마저 안할 수야 있나... 그래도 기다리는 시간이 훨씬 짧아졌고, 차조심하자는 말이나 '이 쪽 길이네~'하고 알려주는 곳으로 잘 뛰어가니 그만해도 너무 고맙고 대견한 성장이다. 
 











지난 화요일에는 연수와 함께 관악구에 있는 '모태산부인과'에 다녀왔다.
둘째는 자연분만을 하고싶어하는 나를 받아주는 병원을 찾아 나선 길이었다.
아빠와 함께 가려면 주말까지 기다려야하는데 그 전주 토요일에 연수 낳았던 병원을 찾아갔다가 거절당하고 나서는 기운은 빠졌지만 마음은 더 급해졌다. 
36주라 아주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혹시 진통이라도 오는데 갈 병원이 없어 우왕좌왕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연수와 둘이서라도 병원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초음파도 볼테고, 이정도 주수면 내진을 할 수도 있어서 연수가 잘 있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연수에게 '선생님이 평화 잘있나 살펴보는 동안 연수가 엄마 옆에 가만히 잘 있어줄 수 있을까?'하고 물었더니 할 수 있다고 했다. 엄마한테 안아달라거나 밖에 나가겠다고 하지 말고 옆에서 같이 잘 보자.. 했더니 참 믿음직스럽게 '응!'하고 대답해서 믿고 떠났다. 
가는 길에도 택시탈까 물었더니 버스타고 싶다고 해서, 버스부터 타고 2호선 지하철역에서 내려 지하철로 갈아타고 서울대입구역까지 잘 갔다. 지하철에서 만난 할머니들께 과자랑 사탕도 받아서 신나게 먹고, 내 손을 잡고 잘 걸어주는 연수가 얼마나 고맙던지.... 
우리 아기, 어느새 참 많이 컸구나.. 생각하니 내 첫아이의 성장이 고맙고 뿌듯해서 괜히 코끝이 찡했다. 

모태산부인과에서 만난 브이백 전문의인 이건영 선생님은 내가 지금껏 만나본 산부인과 의사중에서 가장 자상한 분이었다. 
'출산은 산모님의 힘으로 하는 것이고 자연분만에는 산모님의 의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저희들은 옆에서 도와드릴 뿐이지요.' 
다른 두 병원에서 '저희 병원에서는 안되겠는데요'하는 의사의 말을 듣고 돌아서야했던 나는 출산에 있어서 산모의 의지와 역할을 존중하면서 최선을 다해 돕겠다는 의사를 만나자 그만 눈물이 핑 돌 것 같았다. 반갑고 고마웠다. 열심히 운동하고 많이 걸으셔서 꼭 순산하시라는 따뜻한 격려를 받고 진료실을 나오는데 '아 이제 살겠다' 싶었다. 

연수는 선생님이 초음파를 보는 동안 엄마 옆에 서서 '동생은 자고 있네.. 여기가 얼굴이고, 여기가 다리야' 하는 말씀을 잘 듣고 있었다. 
내진할 때는 선생님이 종이와 연필을 찾아주시며 '잠깐 선생님 책상에서 그림 그리고 있을까. 동생 얼굴 한번 그려보자'하는 말씀에 정말 진지하게 제 나름껏 동그라미를 그리고 눈코입까지 그려넣으며 잘 기다려주었다. 
그런 선생님과 연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늦게라도 이 산부인과를 찾은 것, 이 선생님이 출산을 지켜주시게 된 것을 깊이 감사드렸다. 










병원을 나오니 12시, 점심시간이었다. 
마음도 가볍고 기분이 참 좋아서 '연수야, 우리 맛있는 점심 사먹고 가자. 뭐 먹을까?' 물었더니 '짜장면먹자'는 답이 돌아왔다. ㅎㅎ 
연수가 먹고싶어하는 포도쥬스도 한병 사들고 전철역앞 중국집에 들어가 간짜장 한그릇을 둘이 사이좋게 나누어 먹었다. 
그리고 택시타고 돌아오는 길.. 연수는 차에서 곤히 잤다. 
잠든 아이의 머리칼을 쓸어주면서 '엄마 곁을 지켜줘서 정말 고맙다.. 네가 있어서 엄마는 정말 힘이 나'하고 속으로 말했다. 

연수를 낳고, 키우는 동안 나는 그 생각을 참 많이 했다. 
내가 아이곁을 지켜주는 것 같지만 실은 아이가 내 곁을 지켜주고 있다고.. 이 아이가 있어서 내가 이만큼 힘을 내고, 어려운 것도 견디고 그리고 웃고 행복해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평화도 그럴 것이다. 이제는 두 아이가 내 곁을, 내 삶을 지켜줄 것이다. 

연수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는 이유도 연수가 안가겠다고 하는 것도 있지만, 내가 연수와 함께 보내는 이 시간들이 참 좋아서이다. 연수가 집에 없는 낮시간은 상상이 잘 안된다. 연수와 함께 밥먹고, 같이 산책하고, 책을 읽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함께 노는 시간들이, 어느날 문득 생각해보니 참 행복하고 즐거운 것이었다. 우리는 때로 투닥거리지만 대개 늘 다정하다. 한참 고단할 때는 엄마 혼자 누워 자기도 하고, 연수는 그런 엄마를 좀 찔러보다가 안되면 저 혼자 뭐든 찾아서 한참 더 놀고 끝내 내곁에와서 잔다. 
이제 평화가 태어나면 익숙한 둘만의 시간이 큰 변화를 맞겠지.... 하지만 셋이 보내는 시간에 또 우리는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도.. 즐겁고 행복할 것이다. 
 
연수와 평화... 아이들이 다 자라서 드디어 내가 혼자 낮시간을 보내는 때가 오면 아마 나는 많이 허전하고 허둥거릴 것이다.
한동안 정처를 못잡고 서성거리다가... 나중에야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혼자 산책하면서 다시 평온을 되찾으려 애쓰게 되겠지.. 그런 날은 아직... 아직 멀었지만 말이다. ^^

연수의 낮잠이 길어져서 오늘은 나도 모처럼 밤이 아닌 낮에 블로그 글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비가 많이 온다. 평화는 언제 태어날까..? 기다려진다. 아직 준비할 것들이 좀 남아있고, 만나기로한 약속들도 다음주까지는 있다. 그때까지 기다려줄까? ^^ 
형아될 준비를 하느라고 연수도 요즘 마음이 싱숭생숭할 것이다. 
아 참, 연수랑 요즘 잘 보는 그림책 한권을 블로그에 올려야지.. 생각했었는데 잊지말고 덧붙여야겠다. 
이 책을 본 뒤로 연수는 내가 똥마려워서 '아 배아프다' 하면 '오늘 평화가 태어나는거 아니야?'하고 정색하며 묻는다. ^^;;
동생맞을 준비를 하고있는 아이와 함께 보면 참 좋은 책이다. 



아가야, 안녕? - 10점
제니 오버렌드 지음, 김장성 옮김, 줄리 비바스 그림/사계절출판사



집에서 태어나는 아기.. 자기를 기다리는 많은 형제자매들과 만나게되는 아기... 참 그리운 풍경이다. 
나는 이번에는 자연분만을 할 수있을거라는 기대만으로도 행복하다. 행복하게, 평화롭게 잘 만날 수 있길 빌 뿐이다. 
평화야, 연수야.. 고마운 아이들아. 너희들의 엄마가 되게 해줘서 고맙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