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위한 그림책'이란 모임을 시작했어요.


같은 아파트에 살고있는 엄마들 일곱명 정도가 모여서

한 달에 두 번, 단지 안에 새로 생긴 '작은도서관'에서 조용한 오전에 둘러앉아 

차 한잔 같이 마시면서 다른 엄마가 한장 한장 넘기며 읽어주는 그림책을 듣고 이야기나누는 모임입니다.

돌아가면서 자기가 참 좋아하는, 다른 엄마들과 함께 나누고싶은 그림책을 한, 두 권씩 골라와 읽어주기로 했어요.

 

며칠전에 첫모임이 있었습니다.

엄마와 어디든지 동행하는 우리집 꼬마들은 '작은도서관에 엄마 모임하러 가자'했더니 신나서 엄마보다 먼저 뛰어들어갑니다.

가끔 엄마 무릎에 올라와 젖도 먹고, 엄마 손을 잡아끌며 저희랑 놀자고 조르기도 했지만

다행히 차려진 과자도 먹고 저희들끼리 익숙한 도서관 안을 오고가며 놀기도 하는 동안 

엄마는 그럭저럭 두 권의 그림책을 모두 잘 듣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어요.


거의 매일 아파트 마당과 놀이터를 오가며 얼굴 보고 얘기 나누는 이웃엄마들과

그림책의 따뜻한 감동과 소중한 삶의 이야기들을 함께 나눌 수 있어 너무 고맙고 좋습니다.




할머니가 남긴 선물 - 10점
마거릿 와일드 지음, 론 브룩스 그림, 최순희 옮김/시공주니어




아랫집 아기엄마가 '제목만 봐도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했던 이 그림책을 듣는 동안

저도 눈물이 핑 돌다가 끝내 주르륵 흘러내리고 말았어요.


죽음은 그 앞에 놓여지는 삶에게 정말로 중요하고 절실한 가르침을

얼마나 담백하게 가르쳐주는지요.


소중한 사람과 함께 보고 누리는 하늘, 햇살, 바람, 산책, 따뜻한 포옹 같은 일상의 작은 풍경들이

실은 삶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잔치'라는 것을 

할머니 돼지와 손녀 돼지가 함께 보내는 마지막 하루를 통해 마음 깊이 느끼게 됩니다.


아이들은 금방 자란다고 하지요.

어린 아이들이 품안에 안겨들고 엄마 치맛자락을 붙잡고 그 안에 얼굴을 파묻는 시절은 금새 지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하루해 보내기는 참 어려운 이 시절이지만

돌아보면 꿈결같을 이 시절을, 이 풍경을

고운 것인줄 알고 예쁜 것인줄 알고 소중한 것인줄 알고 

마음껏 누리며 지내야겠습니다.

그게 참 어렵기도 하지만, 그래야겠어요.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혼자 남겨질 것이고, 또 남겨두고 떠나야할 테니까요.

줄 수 있는 선물은 오늘, 함께 있는 이 시간에 최대한 주고, 또 받아서 마음안에 오래오래 간직해두어야겠습니다. 










너무 가물어 농사짓는 분들이 올 여름 많이 힘드시다고 하네요.

비가 좀 왔으면 좋으련만.. 

여름 장마같은 그림속의 빗줄기가 시원해보입니다.


비를 피할 곳이 없는 이들에게는 반가운 비도 고통이 됩니다.

세월호 사고의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고 책임을 분명히 물을 수 있도록 특별법을 제정하자는 서명운동을 전국을 돌며 받고 있는 

세월호 사망자, 실종자 가족대책위 분들도 비가 오면 

죽은 아이들 생각에 더 마음이 아프시겠지요..

무더운 날 길에 서서 서명을 받으시는 것도 힘드시겠지만 비가 와서 그마저 받을 수 없는 날이면 몸도, 마음도 한없이 무겁게 내려앉으실 것입니다.


어느 비오는 아침, 영이는 등교길에 비를 맞으며 담벼락에 기대앉은 거지할아버지를 봅니다.

빗물이 가득 고인 깡통이 할아버지 옆에서 찰랑거립니다.


'망할 영감탱이, 왜 하필 남의 가게 앞에 와서 널부러졌노' 

문방구 아주머니는 볼멘 소리를 하고, 

장난꾸러기 남자아이들은 할아버지를 우산 끝으로 툭 건드려봅니다.

영이는.. 쉬는 시간에 달려나가 할아버지에게 자기의 초록빛 비닐우산을 씌워드리고 뛰어들어옵니다.


살면서 맞닦드리는 많은 일들에 대해

나는 언제나 이들 중 한 입장에 서게 되고, 우리 아이들도 자라면서 그럴 것입니다.


비가 그친 오후에 영이는 하교를 하며 담벼락을 살핍니다.

영이의 비닐 우산이 곱게 접혀진채 담벼락에 기대 세워져있습니다.

'할아버지가 가져가셔도 되는건데'

영이는 종알거리면서 우산을 들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림책이 깊이 묻습니다.



*



이 두권의 그림책을 소개해준 분은 연수와 같은 나이의 막내를 둔 세아이 엄마십니다.

<할머니가 남긴 선물>을 처음 본 것이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던 때라 이 책만 보면 그렇게 눈물이 나셨었다고..

 그 무렵에는 나이 지긋한 할머니할아버지가 나오는 그림책만 보면 모두 내 얘기 같아서 슬펐다고요.


같은 그림책도 시간이 지나고, 또 다른 삶의 고민과 아픔을 안고 지낼 적에 다시 읽으면

또 다른 느낌으로, 깨달음으로 다가온다는 얘기를 들으며

아이들과 함께 여러번 반복해서 읽게 되는 그림책, 특히 좋은 그림책은 어른에게도 참 좋은 울림을 주는구나.

마음을 정화해주는 것이 꼭 '시' 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이의 비닐우산>은 유화로 그린 그림이 

아프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의 감동을 담담하고 힘있게 담아내는 것 같아요.

멀리 큰 미술관에 그림 전시를 보러 가지는 못하지만

집에서, 도서관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오래도록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요.


좋은 책을 소개해주신 인상좋은 우리 언니! 정말 고맙습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책/똑순이 책2011. 4. 11. 00:21



'동생..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무거워지는 말이다.'

두 달뒤면 형이 되는 연수의 심정을, 저 유명한 <청춘예찬>의 첫 문장을 빌려와서 말해보자면 이렇지 않을까...^^:;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 민태원 수필, <청춘예찬>중에서.) 

형제가, 혹은 자매가 싫기보다는 좋고, 밉기보다는 이해가 되고, 괴롭히고 싶기보다는 애틋해서 뭐한가지라도 더 챙겨주고싶어지는 나이는 보통 언제쯤일까..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험으로는 네살 터울인 언니는 대학시절에 함께 자취할 때부터고, 두살 터울인 오빠는 그보다도 훨씬 뒤 그러니까 오빠도 나도 결혼을 해서 아이들을 키우게 된 뒤부터인 것 같다.

그렇다고 우리 3남매가 그렇게 대놓고 으르렁거리고 싸우며 자란 사이는 아니고
어린시절에 함께 장난치고 재미있게 논 기억도 분명히 있기는 한데.. 그래도 내가 언니오빠에 대해 갖는 기본적인 감정이 질투나 경쟁심에서 동질감이나 연민, 고마움 같은 것으로 바뀐 것은 철이 들어도 꽤 많이 들고난 뒤의 일이었다. 

다른 이들은 어떨까... 궁금하다. 
나는 그저 내 경험에 비추어 다른 집 아이들도 다 비슷하겠지.. 생각했는데 대학시절에 그렇지 않은 경우들을 보고 충격을 받기도 했다. 
내가 아는 한 남자후배는 한살 터울인 여동생과 서로를 '아주 친한 친구'라고 얘기할 수 있을만큼 좋아하고, 편안하게 잘 어울려 지냈다. 워낙 가부장적인 집안 분위기속에서 권위적인 오빠와 그에 맞선 반항적인 여동생의 관계를 한번도 벗어나지 못했던 내가 보기에 어떤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고, 서로의 관심과 취미도 비슷해서 서로 조언해주고 함께 공연이나 전시를 보러다니고 까페나 술집에서 서로의 친구들과 함께 잘 어울려 노는 그 남매는 정말 부럽고 신기한 존재였다. 
그들의 어머니께서 이혼후 혼자 자기만의 일을 하며 지내신다는 것을 알고는 막연히 어떤 자유롭고 평등한 가치를 지향하는 어머니나 그 가족의 문화가 이들 남매에게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기도 했었다. 

첫아이를 키우면서 둘째도 낳을까말까 고민할때 사실 제일 마음에 걸렸던 것은 형제자매가 있다는 것이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하는 것이었다. 
지금 내 나이쯤 되고나서보니 어린시절의 추억을 공유하고,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을 지닌 형제자매가 있다는 것이 고맙고 좋다는 생각이지만 사실 자라는 동안에는 단순히 '좋다'고 말하기에는 참 복잡다단한 마음을 들게했던 존재들이 바로 형제자매들이었다. 
태어나 최초로 경험하는 인간관계 중 부모와의 관계 다음으로 맞딱뜨리는 형제자매관계를 통해 인생의 단맛 쓴맛을 모두 맛보기도 하고, 그러면서 또 성숙해왔던 것이 우리들 아닌가... 생각하면 가족이 많으면 더 좋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대가족도, 마을공동체도 없는 도시의 작은 핵가족 안에서 아이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한 아이가 받을 수 있는 충분한 관심은 적어지는게 아닐까, 먹이고 입히는 기본적인 일들만이 아니라 친밀한 어른과의 충분한 정서적 교감, 안정 같은 것들이 어렵진 않을까... 걱정도 많았다. 







+ 블로그 이웃 살림님과 희범이가 놀러왔을때 찍은 사진.
제 또래나 저보다 큰 형아들이 오면 연수는 제법 함께 '놀이'도 하고 같이 잘 노는 편이다. 그런데 왜 동생들이 오면 그렇게 울려보고싶어하는걸까.. 제 힘을 과시하고 싶은 것인지, 그저 어른들 말에 반대로 하고싶어 그러는 것인지, 뭔가 불안하고 막연하게 화가 나서그러는건지...ㅠ.ㅠ 




이런 고민에 아직 딱부러지는 답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소중한 둘째 아이가 생겼고, 곧 태어난다.
연수와 동생 이야기를 하게된 뒤로 이야기거리를 더 풍부하게 해줄만한 그림책을 몇권 구해 같이 읽고 있다.
처음에는 동생 얘기가 나오면 그저 좀 어리둥절한 것 같았던 연수는 시간이 흐르고, 주위 어른들의 이야기를 자꾸 듣다보니 뭔가 이 변화가 마뜩치않다고 여기는 기색이 역력해졌다. 

엄마가 동생을 가진뒤로는 만나는 어른들마다 "연수야, 동생 태어나면 이쁘겠지?", "남동생일까, 여동생일까?"하는 대답하기 힘든 질문을 하신뒤에 곧이어 "연수야. 형이 되면 동생한테 잘 해줘야지?", "동생을 가져서 엄마가 힘드니 앞으로는 연수가 엄마 힘들게하면 안되겠지?" 하는 권고성 당부를 많이 들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일관하더니 나중에는 "싫어, 잘 안해줄꺼야!", "연수는 동생 잘 못 돌봐.", "동생이 태어나면 괴롭혀줄꺼야." 등등 어른들이 깜짝 놀랄만한 대답을 할 때가 많았다.
그런 연수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평화가 태어난 후에 일어날 일들이 걱정도 되고, 또 지금 이런 말들을 하는 연수의 심정이 얼마나 괴로울까.. 싶어 안쓰럽기도 하다. 

'네가 느끼는 부담감이나 어른들의 관심이 어린 동생에게 쏠리는 것이 싫은 마음같은건 당연해.. 엄마가 너랑 지금처럼 많이 놀지못할까봐 걱정되는 것도 당연하고, 그래서 동생이 태어나는게 싫을 수도 있어. 네 마음 엄마도 충분히 이해해.. 동생을 싫어할 수도 있어. 사람은 누구나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있고, 그런 감정은 나쁜게 아니야.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동생을 괴롭히거나 아프게 때리는건 안돼. 너보다 큰 누가 너를 때리려고할 때도 엄마가 못하게 할꺼야. 화가 날때는 차라리 소리를 지르거나, 베게를 때리거나 하는 다른 방법으로 네가 속상한걸 풀도록 하자. 답답한게 있으면 엄마한테 얘기해서 우리 같이 뭔가 방법을 찾아보자. 그리고 동생이 태어난다고해서 엄마가 너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단다...  
어린 동생한테는 엄마가 젖도 주고, 많이 안아주는 보살핌이 필요해. 아기들은 그렇게 보살펴줘야만 잘 자랄 수 있단다. 그건 엄마가 꼭 해줘야할 일이야. 아직 어린 네가 동생을 보살피진 않아도 돼. 그러니 동생한테 네가 보살펴주거나 잘해줘야만한다는 부담은 안 느껴도 돼.. 엄마가 아기보살피는걸 도와줄 순 있겠지. 엄마가 다른 집안일할때 연수가 잘 도와주는 것처럼.. 연수가 그렇게해주면 엄마는 무척 기쁘고 고마울거야...' 

연수에게 앞으로 어떤 얘기들을 해야할지 생각해본다. 막상 얼굴 마주하고는 차분하게 잘 안나오는 얘기들이지만.. 그래도 조금씩 더 노력해야지.. 연수는 이제 뭔가 답답한 게 있으면 먼저 물어오고, 말로 제 기분을 설명하거나 요구할 때가 많아서 엄마도 점점더 차분하게 연수랑 얘기할 준비를 많이 해야한다. (저 말은 에다 르샨의 책 <아이가 나를 미치게할때>에 나오는 '바람직한 대화'를 따라해본 것이다.^^) 그런데 연수랑 그전처럼 많은 시간을 놀아줄 수 없거나 밖에 자주 나가기 어려운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얘기해야할지... 아직 잘 모르겠는 얘기들도 너무 많다. 천천히 더 생각해가야지...
           

아래 책들은 연수랑 엄마 배속에 있는 동생 이야기를 할때 도움이 많이 된다. 재미있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하다. 





엄마, 언제부터 날 사랑했어? - 10점
안니 아고피앙 지음, 클레르 프라네크 그림, 염미희 옮김/문학동네어린이



엄마 배속에 있는 태아가 아주 귀엽게 그려져있는 책.
날로 둥그래지는 엄마 배속에 있다는데 눈에 보이지는 않는 동생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상상해볼 수 있어서 그런가.. 연수가 아주 좋아한다.  
아기가 엄마 배속에서 어떻게 먹는지, 어떻게 놀고 자라는지 알려줘서 좋다. 어린 형아누나들이 동생을 두고 엄마아빠와 나누는 이야기들도 재미있다. 무엇보다 귀여운 그림과 예쁜 색감 때문인지 동생관련 책들중 연수가 제일 자주 찾는 그림책. ^^    




우리집에 아기가 태어나요 - 10점
이토 에미코 지음, 김정화 옮김/애플비




온 가족이 지켜보며 함께 마음을 모으는 가운데, '우리집'에서 태어나는 아기.
우리에게는 많이 생소한 '가정분만(home-birth)' 이야기를 6살 셋째아이의 시각으로 담담하고, 따뜻하게 들려준다. 
위로 오빠가 둘이 있는 마나카(6살)는 엄마에게 동생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은 가을부터 겨울, 봄을 지내며 엄마 배속의 아기 사진을 집컴퓨터로 함께 보기도하고, 심장소리도 들어보면서 동생을 기다린다. 
자기가 태어났던 바로 그 욕조에서 엄마가 동생을 낳는 것을 지켜본 마나카는 "우리 집에 찾아온 아기, 자기 힘으로 태어난 아기, 정말정말 대견해요."하고 얘기하며 동생을 반긴다. 
연수는 마나카누나가 엄마 배에 귀를 기울여보기도 하고, 뽀뽀하는 사진을 보며 저도 엄마 배에 귀를 기울여보고 뽀뽀를 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아름다운 모습, 좋은 모습을 보면 따라하고 싶어지는 것은 사람의 좋은 본성인 것 같다. 그래서 더 자주 보여주고싶은 책.
엄마는 엄마대로 생명의 탄생이 뭉클해서, 고통과 두려움을 견뎌내고 새 생명을 온전히 가족의 품에서, 자연스럽고 평화롭게 맞이하는 엄마의 모습이 존경스러워서 심호흡을 가다듬으며 보게되는 책이다. 
알라딘에서 책을 찾으면 첫 아이는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는 가정분만으로 낳은 블로그 '평온한 강가에서'의 주인장 평온님의 감동적인 리뷰도 볼 수 있다.
가정분만에 대한 입장이나 관심을 떠나서, 새 가족을 맞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밝고 따뜻하게 해줄만한 책이란 생각이 들어서 아이를 가진 모든 엄마아빠들께 권하고싶은 책이다.






동생이 태어날 거야 - 10점
존 버닝햄 글, 헬렌 옥슨버리 그림, 홍연미 옮김/웅진주니어





그림책의 유명한 거장인 존 버닝햄, 헬렌 옥슨버리 부부가 함께 만든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많은 조명을 받았던 책.
연수보다 한두살쯤 많을 것같은 남자아이가 주인공인 이 책은 "엄마, 동생한테 오지말라고 하면 안돼요? 우리에게 아기가 꼭 필요한건 아니잖아요."하는 대사만으로도 어린 연수의 마음에 뭔가 시원함을 선사해주었을 것같은 책이다.
'동생은 커서 어떤 사람이 될까?' 하는 작은 질문 하나로 겨울, 봄, 여름, 가을을 지내며 엄마와 큰아이가 함께 가는 여러 공간에서 '동생이 이 곳에서 일을 한다면 어떨까'하는 상상을 펼치고, 그때마다 골탕먹는 동생을 보며 고소해하기도 하고, 말썽꾸러기 동생을 그려보기도 하고, 고단한 동생을 안쓰러워하기도 하는 등.. 동생에 대한 여러가지 감정을 가상경험해가는 아이가 신기하고 예쁘다. 엄마가 그 모든 얘기들을 귀기울여 듣고, 같이 공감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어야 가능한 일이겠지. 
막상 동생이 태어났을때 "우리 모두 그 애를 많이많이 사랑해줄 꺼예요. 그죠?"하고 말해주는 큰아이..
연수도 그럴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해주기를 바라는 나는 너무 기대가 큰 엄마겠지...? ^^;;;

큰아이와 함께 여러 곳을 다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배부른 엄마의 모습이 참 예뻐서.. 아, 나도 연수와 더 열심히, 더 많이 움직이고 함께 다녀야겠구나.. 생각하게 됐던 책. ^^





터널 - 10점
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 장미란 옮김/논장




마지막으로 골랐던 <터널>은 앤서니 브라운 특유의 상상력이 빛나면서도 최근에 보여주는 '너무 초현실적인' 상상까지는 아닌.. 전래동화 수준의 무난한(?) 이야기다.
서로 너무도 다르고, 그래서 절대 같이 놀지 않는 남매가 어느날 '터널'안에서의 극적인 사건을 통해 서로에 대한 고마움과 믿음을 깨닫게 된다. ^^ 너무 교과서같지만... 그래도 '역시 남매(형제)가 있으니 좋지, 응응?' 하고 대놓고 말하고싶은 것을 참고 은근슬쩍 자꾸 읽어주게 되는 책이다. 그림은 앤서니 브라운답게 역시 재밌다.




연수와 평화는 형제. 
이 형제가 함께 여행을 많이 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우리 부부도 여행을 많이 했으면.. 싶고, 아이들도 함께 온가족이 여행을 해도 좋겠고 아이들이 좀 큰뒤에는 저희들끼리만 여행을 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서로 기대고, 의논하고, 같이 감동도 하고 어려움도 겪으면서 일상에서 느끼기 힘든 든든함과 살가움을 여행을 통해 많이 얻었으면 좋겠다.

처음 평화가 태어나면 어려움이 많겠지...
엄마도, 연수도, 아빠도 그리고 어린 평화도 모두모두 서로에게, 그리고 변화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할테니까....
쉬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주 어려운 시간이 한동안 지나가야할 거라고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려고 애쓰고 있다. 연수가 너무 많이 마음 아프지 않기를, 그래도 우리가 함께 웃는 순간들이 때때로 자주 있어서 서로 마음 따뜻하게 보듬고 지낼 수 있기를... 빌고 또 빈다. 

오늘도 우리집에 놀러온 친구네의 어린 아들(15개월쯤 된 동생이었다)을 보고 연수는 제 장난감도 빌려주지 않고, 또 동생을 때리고 밀치려고 해서 어른들이 자주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다. 연수의 그런 행동을 보며 또 깊은 걱정이 밀려왔지만.... 잘 타이르는것 외에 다른 방법이 있을까. 좀더 엄하게, 강하게 얘기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고 걱정했던 연수의 여러 행동들이 시간이 지나면 대개 사라지긴 했지만, 어린 동생들에게 보이는 이 적대감같은 것도 시간이 지나면 없어질까? 성장의 한 시절은 그렇게 가지가지 진통을 겪으면서 천천히 극복되고 흘러가는 것일까... 
초보엄마의 한숨과 고민은 깊어만 가지만.... 잘 될거라고, 잘 커줄거라고 다시 또 믿으려한다. 그리고 더힘껏 안아주고, 내 삶으로 내가 가르치고싶은 것들을 보여줘야지... 다짐해본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책/똑순이 책2009. 10. 22. 23:46
 

얼마전 친구에게서 책선물을 받았습니다.
똑순이와 함께 보라는 그림책 두 권이었어요.

그림책을 보는 동안 우리는 참 행복했습니다.
함께 마음을 졸이기도 했고, 함께 기뻐하기도 했고, 쿡쿡 웃기도 하며 책 두권에 푹 빠져 지냈어요.
앞으로도 한동안 그럴 것같습니다. 
그러다 문득 잊고 한참 안보게 되더라도 언젠가 책장에 있는 많은 책들중에 우연히 다시 꺼내 펴보게 되면
또 새롭게 더 좋아하게 될 책들, <엄마 마중>과 <넉 점 반> 입니다.






엄마 마중 - 10점
김동성 그림, 이태준 글/한길사




추워서 코 끝이 새빨개진 아이가 전차 정류장으로 엄마 마중을 나옵니다.
모자도 단단히 쓰고, 두터운 겉옷도 입고.. 겨울입니다.
아이는 정류장 팻말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작대기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정류장 팻말 기둥에 붙잡고 빙빙 돌기도 하다가
전차가 땡떙! 하고 도착할 때마다 차장에게 묻습니다.
"우리 엄마 안 와요?"

소쿠리를 든 아줌마가 누나 손을 잡고 내리기도 하고, 학교 파한 형아들이 장난치며 뛰어내리기도 하며
전차가 여러대 지나갔는데 기다리는 엄마는 내리지 않습니다.
차장 아저씨들은 "너희 엄마를 내가 아니?"하고 지나갈 뿐입니다.
똑순이와 저는 살며시 겁이 납니다. 엄마가 얼른 오셔야할텐데..
추운날 정류장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이 따순 방안에 앉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어느 다정한 차장 아저씨가
"오! 엄마를 기다리는 아가구나."하고 전차에서 내려와서 "다칠라. 너희 엄마 오시도록 한군데만 가만히 섰거라, 응?" 하고
얘기해주어서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요..
그러나 그 다음부터 정말 아가는 '바람이 불어도 꼼짝 안 하고, 전차가 와도 다시는 묻지도 않고, 코만 새빨개서 가만히 서 있습니다.'
여기까지 읽는 동안 우리는 그만 울고싶은 마음이 됩니다.
한군데만, 가만히, 서 있어야 엄마를 만날 수 있다는 얘기에 정말 꼼짝도 않고 서있는 아가 옆으로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정류장에 오도카니 서서 길건너 높은 건물들을 바라보는 아기는 얼마나 작아보이는지요.

눈이 옵니다. 
아기가 걸어나온 동네골목길에도 눈이 쌓입니다. 
처음에 저는 아이가 엄마를 만나지 못한 채로 그림책이 끝난줄 알고 얼마나 슬펐는지 모릅니다.
"똑순아, 어쩌니.. 아이는 엄마를 만났을까? 만났을꺼야, 그럼.. 만났겠지.." 
 
그러나 마지막 그림에서, 눈이 펑펑 오는 골목길에 엄마와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이가 조그맣게 그려져있는 것을 찾아내고
폴짝폴짝 뛰며 기뻐했습니다.
"이것봐! 엄마야!! 똑순아, 아이가 엄마를 만났어! 아이가 엄마랑 손을 잡고 가네. 이쪽 손에는 사탕도 들고있네.. 엄마가 사탕을 사주셨나봐.. 그럼 그럼, 기다리면 엄마는 꼭 와..."

똑순이도 웃고, 저도 웃고 우리는 너무 행복해져서 그림속의 모자처럼 손도 잡아보고 안아도봅니다. 
똑순이는 그림속의 아이가 먹는 사탕을 가리키며 매일 한개씩만 먹기로한 자기의 비타민 사탕을 달라고하고
저는 기쁜 마음으로 사탕을 가져다줍니다. "흥흥흥~" 똑순이가 좋아하면서 사탕을 먹습니다. 행복한 저녁입니다. ^^





넉 점 반 - 10점
이영경 그림, 윤석중 글/창비(창작과비평사)




네 살쯤 됐을까요... 어린 여자아이가 호박 넝쿨옆에서 놀고 있습니다.
아이는 무척 심심해 보입니다.
아직 어린 호박을 따볼까 싶어 한 손으로 잡아당기고 있습니다.
다 자라지도 않은 호박을 따면 엄마한테 야단맞을텐데.. 알면서도 너무 심심하니 어쩔수 없이 하는 일일 것입니다.
언니오빠들이 다 학교에 가고 없는 오후, 엄마는 어린 동생을 돌보며 집안일에 바쁘고 강아지만 아이옆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이가 당기는 호박줄기가 팽팽하니 끊어질 것만 같은 그 때,
엄마가 갑자기 아이를 부르며 가겟집에 가서 영감님께 몇신지 여쭤보고 오라고 심부름을 시킵니다.
엄마는 정말 시간이 궁금했을까요..?
아이처럼, 엄마도 너무 시간이 안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던건 아닐까.. 문득 생각했어요.
저도 가끔 똑순이가 낮잠잘 시간이 다 됐는데 안자고 자꾸 엄마에게 붙어 놀자고만 하고, 똑순이 재워놓고 해야할 집안일은 밀려있는 한낮쯤되면 유난히 시간이 안가는것 같아 자꾸만 시계바늘을 쳐다보곤 하거든요.

젖먹이 막내를 얼른 재워놓고 저녁 준비를 해야하는데, 바로 위 딸아이가 젖먹이는 엄마 곁과 마당가를 맴맴 도는 통에
동생도 잠이 안들고, 아이는 어린 호박을 따는 사고를 칠 것만 같은 바로 그 순간.
이 엄마도 퍼뜩 아이에게 작은 심부름겸 놀거리를 주어 온통 재밌는것 투성이인 세상 속으로 살그머니 밀어넣은 것은 아닐까...
그래서 아이는 시간을 알아오라는 이 재미난 심부름거리를 받아들고 타박타박 가겟집에 갑니다.
없는것 빼고는 다 있는, 동네 복덕방도 겸하는 '구복상회'를 향해가는 아이의 표정이 살짝 신납니다.

"영감님 영감님 엄마가 시방 몇 시냐구요"
"넉 점 반이다"
"넉 점 반 넉 점 반"

가겟집 문을 나서 오른쪽으로 꺽으면 바로 집인데 그만 왼쪽에는 가겟집앞에 묶어놓고 파는 닭이 있습니다.
대야에 올라서서 톡톡 물을 쪼아먹는 닭 옆에는 닭장에서 떨어졌는가.. 죽은 지렁이가 한마리 있고요.
'이게 왠 떡이냐'하고 개미들이 한데 모여 영차영차 끌고 갑니다.
의기양양하게 지렁이를 받쳐든 개미떼가 개미집까지 거진 다 왔는데... 이런!
그만 고추잠자리 한마리가 지렁이를 홱~ 낚아채서 날아가버립니다.
고추잠자리는 가겟집에서 한참 떨어진 논둑길까지 날아갔는데 오는 길에 지렁이는 떨어뜨렸는지 보이지 않고
멀쩡한 두꺼비만 한마리 흙길에 나와 '어디 하늘에서 먹을 것 좀 안 떨어지나' 하는 표정으로 의젓하게 앉아있습니다.
고추잠자리는 분꽃 덤불에 사뿐이 내려앉습니다.
아이는...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따라온 아이는 고추잠자리를 잡아보려고 손을 뻗지만 
아마도 고추잠자리는 날아가고 예쁜 분꽃 송이만 아이 손에 잡혔을 것입니다.
 
분꽃 덤불에 앉아 분꽃잎을 따고, 터트리면 하얀 분같은 가루가 나오는 까만 분꽃 열매도 가지고 노는 아이 옆으로
데이트하는 젊은 청년과 수줍은 처녀가 양산을 받치고 살짝 떨어져서 지나가고,
학교 파한 오빠들이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오다 이 둘을 놀리며 재밌어합니다.
아이가 파묻혀앉은 분꽃 덤불 속에서 메추라기 가족이 이른 저녁을 먹습니다.
긴 여름 오후가 끝나갈 무렵 시골의 다정하고 설레는 풍경 좀 보세요..

해가 꼴딱 지고 나서야 구복상회와 작은 실개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제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마침내 제 임무를 무사히 완수하게된 자랑스러움이 빛나는 얼굴로 엄마를 향해 외칩니다.

"엄마
시방 넉 점 반이래."

"흐흐흥~" 똑순이가 웃고, 저도 같이 깔깔 웃습니다.

안방에서 벌써 남동생들과 둘러앉아 저녁밥을 먹고 있던 큰언니가 마루로 올라오는 아이를 웃으며 돌아보고,
엄마는 웃을듯 말듯 다정한 눈으로 아이를 바라봅니다.
'아무리 놀다 오라고 내보냈지만 이렇게 늦게까지 혼자서 뭘 하고 놀았니, 이 녀석...'
어린 딸을 측은해하기도 하고, 귀여워하기도 하는 젊은 엄마의 마음을 생각하며
문득 어린 시절, 나를 보던 우리 엄마 모습도 이랬을까 하는 생각에 울컥하기도 합니다. 
동생젖을 먹이고 있는 엄마 옆에는 솥단지에서 퍼놓은 아이밥 한공기가 아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집의 저녁풍경은 왠지 낯이 익습니다.
어린 시절에 저도 늘 밖에서 친구들과 뛰어놀다가 해가 꼴딱 진 뒤에,
가족들이 모두 마루위 밥상에 앉아 머리를 맞대고 밥을 먹고 있을 때 집에 돌아오곤 했습니다.
'인제야 왔냐, 일찍 좀 오지, 얼른 올라와 밥먹어라'
아직도 젊으셨던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 그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이 그림책을 읽는 동안 저는 내내 이 여자아이가 책을 선물해준 그 친구를 무척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톡 튀어나온 이마하며, 통통한 볼하며.. 딱 그 친구의 어린시절 모습 같았거든요.
그런데 신기하지요.. 그 얘길 했더니 친구가 하는 말이 "나는 그 애가 정말 너같다고 계속 생각했어!"
우리가 둘다 서로를 생각했며 읽었던지라
그리운 친구의 어린시절 이야기인듯 더 마음 뭉클했었나 봅니다.
저 위의 <엄마 마중>은 32개월된 아들을 둔 그 친구도, 이제 17개월을 향해가는 아들을 둔 저도 모두 자기 아들들을 생각하며 짠해했고요. ^^










모자만 씌우면 벗기 바쁜 똑순이에게
"이 아이 좀 봐. 모자를 아주 단단히 쓰고 있네...  이제 날이 추워졌으니까 연수도 밖에 나갈때는 모자를 잘 쓰자" 했더니
이 녀석, 제 모자를 가져다달라고 하더니 혼자 낑낑 거리며 열심히 모자를 써봅니다.
몇 번 도전한 끝에 혼자 모자를 쓸수 있게 되었어요.
밖에 나갈 때도 물론 잘 쓰고 있습니다. 다른 책에서 소방관 아저씨들이 모자를 쓰고 있는걸 보고는 더 열심이지요..^^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을 때가 참 좋습니다.
위에 두 책처럼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가 풍성하고, 그림이 곱고, 제 마음까지 따뜻하게 울려주는 그림책을 읽을 때는
정말 행복하고요.
그래서 하루종일 끝없이 밀려드는 집안일에 지치다가도
똑순이가 그림책을 들고 달려오면 잠시 저도 일손을 멈추고, 마음도 함께 내려놓고 아이와 같이 그림책을 읽습니다.
정히 바쁠때는 아이 혼자 넘기게 하고 손은 일은 계속 하면서, 눈과 입으로는 아이와 함께 읽고 얘기합니다.
그마저도 못할때 똑순이는 엄마가 설겆이하는 개수대에 책을 쏙 집어넣기도 하고, 엄마 다리를 끌어당기며 어서 읽자 조릅니다.
이책저책 들고와 채근하는 아이가 귀찮을 때도 있고, 똑같은 책을 여러번 읽는 것이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무릎위에 궁둥이를 쑥 들이미는 아이를 꼭 끌어앉고,
혹은 몸을 꼭 붙이고 나란히 앉아서 함께 책장을 넘기며 재미나게 그림책 읽는 행복한 순간을
하루중에 되도록이면 많이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그 시간은 제게도 고마운 휴식과 위안이 됩니다.

그래서 좋은 그림책이 참 중요합니다. 함께 읽는 어른의 마음까지도 따뜻해지고 행복해지게 하는 책들.
슬그머니, 혹은 깔깔깔 웃게 하는 책들.
잘 만든, 좋은 그림책을 보고 있으면 배우는 것도 많고, 생각할 것도 많습니다.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즐거움도 크고요.
내용의 흐름에 호흡을 함께 하면서 긴장도 하고, 그 긴장이 풀리면서 웃기도 하는 그런 스토리의 힘, 그리고 글로 써있지 않은 더 많은 이야기들도 상상할 수 있게 하는 그림의 힘이 있는 책이 좋은 그림책인 것 같아요.
그렇지않은 책들은 전달하려는 지식이 아무리 많고, 아무리 비싼 책들이라도 재미가 없기 때문에 아이도 좋아하기 힘들고, 함께 읽는 어른도 흥이 안나는것 같습니다.   

이 두 책을 읽고 새삼 똑순이와 함께 읽을 수 있는 좋은 그림책에 대한 욕구가 커졌습니다.
요사이 친척들께 물려받은 전집 형태의 그림책이 많아 단행본 그림책을 거의 사지 않고 지냈어요.
그 전집들도 모두 그림과 내용이 좋은 만족스러운 책들이지만 어쩐 일인지 모두 외국 그림책들이예요.
창비사의 <우리 시 그림책> 시리즈와 같은 최근(?)에 나온, 우리네 옛생활이나 풍경,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잘 담긴 그런 책들을 더 구해 읽고 싶습니다. 
그런 책들이 엄마의 취향과 정서에 잘 부합하는 책들이지요.ㅎㅎ
아마도 똑순이는 다른 일상의 면면에서도 그렇겠지만 그림책을 통해서도 엄마의 시골스럽고 감정이 수시로 북받치는 그런 정서를 어느 정도는 닮게 될것 같습니다. 그건 좋은 걸까요.. 촌스러운 걸까요, 아니면 귀찮은 걸까요..^^;;

참, 이 두 책은 모두 1930~40년대에 씌어진 원작들을 가지고 오늘의 그림책작가들이 그려낸 것입니다.
윤석중의 <넉 점 반>은 1940년에 쓰여진 동시이고, 이태준의 <엄마 마중>은 1938년에 발행된 '조선아동문학집'에 실려있던 동화입니다. 
그 시대의 풍경을 너무도 잘 복원하면서, 아이들의 정서 또한 참으로 잘 담아낸 그림책 작가들의 능력과 수고가 참 고마워지는 책들입니다.
원작의 맛을 살릴 뿐만 아니라, 그 속에 자신만의 상상력과 이야기를 녹여내는 것까지가 그림책 작가의 능력이라는 것을 특히 '시'를 원작으로한 그림책들에서 많이 느낍니다. 어린이시로 유명한 외국시인인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의 시를 내용으로 그려진 그림책들을 보면 같은 시를 두고 다른 그림책작가가 그렸을때 얼마나 다른 얘기와 그림이 나오는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책을 보다 문득 생각나 컴퓨터를 뒤져보니 결혼 전에 신랑과 신랑의 청년회 동료분들과 함께 갔던 '철원 평화기행'에서 이태준 시비를 찍어온 사진이 있었습니다.





 



철원군 대마리 두루미평화관 입구에 세워져있는 '상허 이태준 문학비' 전경이예요.

우리 땅 어느 곳이 안 그럴까마는.. 철원도 풍광이 참 아름다운 고장이었습니다.
분단의 상처로 여전히 아픈 땅이지만, 평화를 향한 꿈도 그래서 더 간절한 땅.
월북작가로 저도 제대로 그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어 사진을 찍으면서도 낯설던 이태준의 글을
어린 아들의 그림책에서 만나고, 코끝 찡해하며 뭉클해할 수 있었던 것이 고마워집니다.

언제 또 철원을 찾을 일이 있게되면 그때는 똑순이랑 함께 가서
이 시비를 보며 "네가 참 좋아하는 '엄마 마중'을 쓴 그 작가분이란다.." 하고 얘기해줘야겠어요.
두루미평화회관에서 바라보이던 너른 들판과 먼 백마고지 같은 아름답고 마음아픈 풍경을 다시 보면서
아이와 함께 천천히 걷고 많이 이야기하는 날들을 그려봅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책/똑순이 책2009. 4. 6. 10:45



시리동동 거미동동 - 10점
제주도꼬리따기노래·권윤덕 그림/창비(창작과비평사)



똑순이가 요즘 아주 좋아하는 그림책입니다.
똑순이도 엄마아빠처럼 제주도에 가고싶은걸까요? ^^


제주도, 햇살 밝은 오후.
혼자 집에서 놀던 아이가 마루위에 놓인 바구니에서 찐 감자 한 알을 꺼내들고 집을 나선다.
왕거미 흰 거미줄이 눈부시다.
집 담옆에 앉아있던 토끼가 따라 나온다.
아이와 토끼는 친구가 된다.
돌담위에 앉아있던 까마귀도 뒤따라와 친구가 된다.
셋은 검고 높은 바위위에 앉아 감자를 나눠먹고
까마귀를 타고 하늘을 난다.
높은 하늘을 날아 찾아간 곳은
해녀 엄마가 물질하는 바닷가.
성게를 따고 나온 엄마는 셋을 모두 포근히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작은 집 방에는 따뜻한 불이 켜지고
토끼랑 까마귀랑 왕거미는 담옆에서 코 잠이 들었다.


.... 이런 이야기가
색감이 곱고, 단순한 그림과 짧은 꼬리따기 노래 가락에 실려 펼쳐집니다.

제주도 풍경이 참 섬세하면서도 잔잔하게 잘 그려진 그림책이라고, 새댁도 보면서 감탄했습니다.
집 옆에도, 푸른 들판과 밭, 야트막한 오름 중간중간에도 검고 낮은 돌담들이 잔잔하게 이어져있고,
옅은 녹색과 진한 청색을 오고가는 제주도 바다빛도 잘 살려 그려져있고요.

그림에 직선이 많고 캐릭터들이 아주 귀엽(?)진 않아서 똑순이도 처음에는 그리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꼬리따기 노래때문인지 자꾸 보고싶어하는 책이 되었습니다.

아이는 엄마와 둘이 사는가 봅니다. 
어두워지는 저녁, 댓돌 위에는 엄마의 흰 고무신과 아이의 까만 고무신 두 켤레뿐입니다.
아이가 엄마를 찾아 타박타박 걸어가는 길 옆, 먼 밭 한켠에 돌담으로 둘러싸인 작은 무덤이 하나 있는데
아이 아빠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아가 잘 놀고, 튼튼히 잘 크라며 멀리서 지켜보고 있을지도요.

발그스레한 흙이 인상적인 제주도 밭들 사이사이,
예쁜 돌담에 둘러쌓인채 옹기종기 들어앉아있는 봉긋한 봉분들이 무척 이채로웠는데
그 모습도 그림책에 담겨있으니 더 반갑습니다.

햇살좋은 날에 이 책을 가만히 보다 보면 
일나간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애틋한 심정이 잘 전해져옵니다.
심심하고 조용한 오후,
토끼와 까마귀가 아이랑 함께 있어주어 참 다행입니다.
혼자 엄마를 기다린다면 얼마나 외롭겠어요.

+

지난 4월 3일에는 문득 달력을 보다 '아 오늘이 4.3이구나..'생각하고는
하루 2~3번은 꼭 읽어주게되는 '시리동동 거미동동'을 그 날도 읽으며 괜히 마음 한구석 짠했습니다.

옛날, 어느새 12년이나 지난 새댁의 대학 새내기 시절 이 날에는,
학교 꼭대기쯤에 있는 문과대 건물 로비에서 '레드 헌트'라는 4.3 당시의 양민학살을 다룬 다큐멘타리를 상영한다고
전투경찰들이 학교 정문을 박차고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그리 먼 시절도 아닌데, 아득한 옛날 얘기같기도 하고.. 지금도 크게 달라지진 않은것 같기도 하고요.
 
예쁜 아가 그림책 보며 너무 무시무시한 생각을 한것도 같지만..
아무튼 아픈 상처때문에라도 더욱 아름답고 눈물겨워지는 섬, 제주입니다. 

똑순이가 좀 많이 커서, 한참씩 잘 걸을 수 있게되면..
손잡고 꼭 제주도 저 돌담길과 바닷가를 걸어봐야겠어요.
'시리동동 거미동동에 나왔던 그 바위네~'하고 얘기하면서요.
^^ 


+

이런저런 책들 보며 '아 블로그에 소개하고싶다'고 생각만 하다가
맘먹고 카테고리 정리도 다시 하고.. 똑순이 그림책부터 담아봤습니다.
혹시 수익이 좀 있을까 싶어 알라딘 광고도 달았구요..^^;
'새댁 추천도서' 이름붙이고 나니 뻘쭘한데요..
특별활동 시간에 도서부 활동하던 초등학교때부터 도서관 야간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원 시절까지 통털어
도서관은 늘 참 좋은 놀이터였습니다.
수익보다는 제가 느낀 '고마움'들을 블로그 이웃분들과 나누고 
이웃분들과 두런두런 책 얘기도 많이 나누는 놀이터 하나 열어 재밌게 놀고 싶습니다.
좋은 책도 많이 추천해 주세요~^^

+

아! 하나 더~

이 봄에, 제가 좋아하는 연인들이 제주 올레길 여행에 다녀왔더라구요.
그 사진들 보며 멀리 집안에서도 잠시 제주의 시원하고 맑고 단(왠지 달아요, 제주 공기는..) 바람이 느껴지는듯 했습니다.
양해를 얻어 블로그 이웃분들께도 소개합니다~^^ 
노란 빛, 연두빛, 초록빛, 검은 빛이 어우러진.. 제주도와 우도의 아름다운 땅을 지금 한번 내려다보세요~  

쭌이의 시선으로 세상 바라보기- 여행기록 '2009 화순,부안,제주올레길'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09. 3. 15. 20:57


똑순이가 최근에 빠이빠이를 배웠습니다.
육아책에는 6개월쯤부터 할 수 있다고 나와있었지만 울 똑순이는 이제야~~^^;
뭐.. 그럼 어떻습니까.
아빠가 출근할때 엄마랑 같이 현관앞에서 "아빠 안녕~" 하고 손을 흔들며 빠이빠이를 하면
셋이 모두 아주 흐뭇하지요~^^

그런데 며칠 전,
똑순이가 좋아하는 그림책 '달님 안녕'을 펴서 읽어주고 있었습니다.

한 선배의 표현에 따르자면 전세계 아이들이 열광한다는 그림책 '달님 안녕'에는
구름 아저씨가 등장합니다.
달님은 그닥 원하지 않는듯 보이는 대화를 나누느라 달님을 잠시 가렸다가 사라지는 나름 '악역'이지요.
본연의 운명에 충실할 뿐이지만.. 지붕위의 고양이들과 전세계 갓난아이들의 원망을 받는 슬픈 운명의 소유자입니다. 

이 구름아저씨가 사라지며 
"미안 미안. 달님과 잠깐 이야기했지. 그럼 안녕! 또 만나요" 하고 말하는데
아.
이 대사중 '그럼 안녕!'에서 똑순이가 천진하게 손을 들어  
구름아저씨에게 빠이빠이를 했습니다!

이야아~~^----------------------^
똑순이가 그림책의 내용을 이해(?), 나름 알아듣고 있는 것입니다!

아! 우리 아가가 책을 알아듣다니~!!
새댁, 그 순간 어찌나 뿌듯하고 감동스럽던지요.
'지난 9개월간 열심히 키운 보람'이 한순간 다 느껴지는듯 싶었다니까요. ㅋㅋ

그 날 이후, '달님 안녕'을 다시 여러 차례 읽어줬지만
똑순이는 다시 빠이빠이를 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 구절 '그럼 안녕!'은
오랫동안 새댁에게 가장 감동적인 그림책 구절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






요 조그만 아이의 작은 성장이 이렇게 기쁘고  신기할 줄이야..
매일매일 조금씩 자라는 아이의 모습이 너무 예쁩니다.
내 아이만 무슨 특별한걸 하는 것도 아닐텐데 이렇게 블로그에 써서 기록해놓고 싶은걸 보니..
새댁도 역시 못말리는 고슴도치 엄마지요? ^^


그런데 똑순아,
말도 늦게 해도 되고, 실은 책도 늦게 읽어도 괜찮아.
엄마가 바라는건 딱 하나. 네가 건강하게 잘 자라는거란다. ^^
무럭무럭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


꽃샘추위에, 황사에.. 봄을 여는 진통이 만만치 않습니다.
지난 겨울 긴추위를 잘 견뎌낸 꽃망울들, 새잎들이 남은 추위도 잘 이기고.. 
제 모양대로 제 마음껏 자라나기를 기다려봅니다.
똑순이와 함께 맞을 첫 봄이 새댁도 무척 기다려집니다.







주말에 아빠랑 무등타고 노는 똑순입니다. 많이 컸지요? 또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만발입니다. ^^



 앗. 신랑 표정이 이상합니다. (미안~) 똑순이가 조금 무거워졌나봅니다~~ㅎㅎ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