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의 세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11.09 걱정하지마, 친구들이 데리러 올꺼야 12
  2. 2009.09.30 종이사탕을 그려주며 14


1. 걱정하지마, 친구들이 데리러 올꺼야


연수는 간식거리들을 이 방 저 방 들고 돌아다니면서 먹는 버릇이 있다. (접시들고 어디든 가는 엄마에게 배운 거겠지만...--)
흘리고 쏟아서 방이 어질러지는 것도 문제지만 먹던 음식을 아무 곳에나 던져두고 놀다가 잊어버리는 것도 문제라
음식은 되도록 식탁에서만 먹고 먹다 남으면 식탁위 접시에 다시 가져다 놓으라 일렀다.
물론 잘 안 듣는다..-,.-;;;
 

엄마: 연수야, 안방 바닥에 놔둔 귤조각들 얼른 주워라..
연수: 싫어요~
엄마: 먹던 음식을 바닥에 놔두면 어떡해. 그릇에다 잘 담아놔야지. 얼른~~.
연수: 아니예요~~~, 그냥 바닥에 놔두는 거예요.
엄마: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다) 고구마 담긴 접시도 소파위에 놔뒀더라... 그 접시에 귤도 같이 담아서 식탁위에 올려놓자.... 응?!!
연수: (엄마의 목소리가 심상치않음을 느끼긴 했으나 그래도 장난삼아 좀더 버텨볼려고 노래를 한다) 안된다요, 안된다요~~~
엄마: 김연수!!!! 얼른 담아놓고 놀아. 안그러면 이제부터 다른 간식은 아무 것도 안 줄거야! 음식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음식먹을 자격이 없다고 엄마가 여러번 말했지!!!! 니가 바닥에 던져논 귤들이 얼마나 속상하겠어!

다른 간식을 먹을 수 없다는 말에 찔끔한 김연수..... 그제야 귤을 주우러 간다. 그러면서 쫑알쫑알, 신기한 말을 하길래
가만히 들어보니...

연수: 귤아, 걱정하지마~ 접시에 있는 친구들이 데리러 올거야~~.

귤을 위로하고 있다. ^^;;;;;;
아구, 이 녀석아.. 위로는 엄마도 필요한데..

언제쯤이면 아이에게 '이거 안하면 다른 걸 못하게 될 줄 알아' 하는 협박을 안하고 아이를 움직이게 할 수 있을까.
오늘도 또 단단한 벽에 머리를 쿵 박는 기분으로 반성한다.
'걱정하지마, 친구들이 데리러 올거야' 하고 다정한 위로의 말을 할 수 있을만큼 어느새 쑥 자란 아이에게 고맙고 부끄럽다.





2. 여우가 도망갔어


연수가 요즘 옛날 시골 어린이들의 놀이문화가 고스란히 살아나있는 그림책 '국시꼬랭이' 세트에 푹 빠져있다.
어느 저녁 제 놀이방 형광등을 번쩍! 키더니 부엌에서 저녁준비를 하고 있던 내게로 후다닥 뛰어왔다.

연수: 엄마, 엄마! 여우가 도망갔어!
엄마: 여우가 도망갔다고?
연수: 응~! 놀이방에 불을 켰더니 여우가 도망갔어!

무슨 소린가.. 하고 얼른 못 알아듣고 있다가 잠시 후에야 '달구와 손톱'편에 나오는 여우귀신이 엄마가 방에 불을 켜자 뒷문으로 후다닥 도망갔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는걸 알았다. 

엄마: 아~ 연수가 불을 켜니까 여우가 깜짝 놀라서 도망갔어? ^^
연수: 응! '아구 무서워~'하고 도망갔지 뭐야~~!

그랬구나... 아무튼 그 뒤로도 연수는 우리집 화장실에 부엉이가 살고 있다며 부엉이 가지고 놀으라고 제 장난감을 화장실에 갖다주는가 하면 
제 고무신으로 기차도 만들고 배도 타고 이것저것 따라하며 신나게 잘 논다. 

바야흐로 상상의 시대가 만개하는가 보다. 
이야기속의 등장인물들과 함께 놀고, 실제로 겪은 것처럼 지치지도 않고 여러번 반복해서 흉내내고 상상한다.  
그 시절이 부럽고, 나도 그 상상에 생동감과 즐거움을 더 해줄 수 있는 놀이친구가 되고싶어 우리집에 같이 사는 여우와 부엉이를 잊지않으려고 노력중이다. 




3. 생각해보자



늦은 낮잠을 자고난 연수와 식탁에 앉아 떡을 나눠먹었다.
그때 마침 압력밥솥에서 밥이 끓느라고 '스륵스륵' 소리가 났다.

연수: 연수랑 엄마랑 떡을 먹는데 귀뚜라미가 우네?
엄마: ^^;;; 그랬어? 정말 귀뚜라미 소리 같네.. 저기 밥솥에서 밥이 끓는 소리같은데.
연수: 아니야, 귀뚜라미 소리야. 귀뚜라미가 울었어!
엄마: (한발 물러서기로 하고) 그래~ 연수가 귀뚜라미 소리를 들었나보구나..
연수: 귀뚜라미는 뭐 먹지?
엄마: (어떻게 대답할까 궁리하다 얼른 대답을 못하고) 글쎄....?
연수: ... 생각해보자.

ㅎㅎㅎ
떡을 먹다가 밥솥소리를 귀뚜라미 소리로 잘못 듣고, 이제는 (나는 떡을 먹는데) 귀뚜라미는 뭘 먹어야하나를 '생각'하는 세살배기 아들을 보며, 나는 그 진지함에 깊이 감동받았다.
흐뭇한 마음으로 빙그레 웃으며 내가 남은 떡을 마저 먹는데 연수가 벌컥 화를 냈다.

연수: 연수가 다 먹으려고 했는데 엄마 왜 먹었어! 앙~~~!!!!!

무안하게도 진짜 화를 낸다. 울음도 터진다. 
거 참, 떡 하나 가지고.... 말은 의젓한 녀석이 먹는 거 앞에선 엄청 쫀쫀하다.

엄마: 엄마랑 너랑 같이 먹는거지.. 너 혼자 다 먹으려고 하면 되냐~ 울지마 울지마.. 치즈 줄께!

눈물고인 눈으로 치즈를 먹는 연수.
이 일에 대해서도 생각 좀 해보자.



+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흘러간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나씩 새로운 말을 배워가고 제 나름대로 그 말들을 제가 생각하기에 적절한 순간에 절묘하게 써가며 
어린 연수가 매일 자라고 있듯이
나도 내게 주어진 매일의 시간을 그렇게 성장에 쓰고 싶다.
꼬물꼬물거리며 내 속에서 부단히 조금씩 자라고 있을 어린 태아 평화처럼..
같은 시간이 흘러간뒤에 우리의 성장도 공평하기를.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09. 9. 30. 22:49







시작은 이 막대사탕 그림이었습니다.
사탕은 아직 제대로 먹어본 적도 없는 녀석이 그림책에 나온 막대사탕을 보고는
손으로 꼭 쥐는 시늉을 해가며 앵앵앵~ 사탕을 달라 떼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가느다란 사탕막대를 쥐어보려고 엄지랑 검지를 딱 붙이며 고사리손을 세게 오므리고 있는 모양이 애처롭기도 했고 
울음 반 괴성 반 섞인 투정소리가 너무 커서 어떻게든 해줘야할 것 같았습니다.
집에 사탕은 없고.. 급한대로 옆에 있던 색연필을 집어 막대사탕을 하나 그렸습니다.

"연수야, 엄마가 사탕 만들어줄께. 봐.. 그림이랑 똑같지? 이건 연수 사탕이야"
가위로 오려 종이사탕을 손에 쥐어주니 다행히 아이는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종이 사탕을 만져보고 웃더니 잠시 들고 돌아다니다 어딘가 휙 던져놓고는 
언제 자기가 울었냐는듯 환한 얼굴로 또다른 놀거리를 찾아갔습니다.
 
그래도 나중에 저 책을 다시 보다가 사탕그림이 나오자 자기 사탕을 찾는 눈치였어요.
'네 사탕은 거실 소파위에 있더라' 하니 가서 찾아들고 와서 또 만지작거립니다.
'이건 내 사탕이야!' 흡족하다는듯이.. ^^;







꽃을 좋아하는 아이는 밖에서도 꽃만 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는데
요즘은 그림책에 나온 꽃도 꺽는 시늉을 하며 갖고 싶어 안달입니다.
할수없이 종이사탕에 이어 종이꽃들이 줄줄이 출현합니다.
민들레, 도라지꽃, 코스모스...
엄마의 그림실력이 훌륭한 편도 아닌데.. 그리기 어려운 꽃은 안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이 엉성한 엄마표 종이꽃을 아직은 좋아해서 다행입니다.
그림속의 사물을 실제 사물처럼 상상(?)하며 가지고 놀수 있게 된 아이를 보며
아이의 마음이 또 한 걸음 새로운 성장의 단계에 들어선 것 같아 뭉클했습니다.

얼마전부터는 엄마와 제법 인형놀이도 하게 되었어요. 
어느날 밥먹으면서보니 아이가 제 밥그릇에 그려져있는 곰인형에게 제가 먹고있던 계란말이를 먹여주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곰인형의 입부분에 계란을 갖다놓고 먹여주는 시늉을 하는 아이를 보니
귀엽기도 하고, 엄마도 처음 대하는 풍경이라 당황스럽기도 해서 어떡할까.. 3초쯤은 고민한 후-
"와 맛있겠다, 곰돌이가 냠냠냠 잘 먹을꺼야" 하고 옆에서 거들어 주었습니다. ^^

음식을 먹으면 없어져야하는데 곰돌이 입위에 올려둔 반찬은 계속 그대로인게 영 맘에 걸리는지
제 밥도 안먹고 곰돌이 먹이기에만 열중하길래
"곰돌이는 아주 작으니까 음식도 조금만 먹을꺼야, 우리 눈에는 안 먹은것 같아도 다 먹고 있을거야" 라고 얘기해줬습니다.
그리곤 "곰돌이 한입 먹었으니 연수도 한입 먹어~"하고 밥숟가락을 떠넣어주니 꿀꺽 잘 받아 먹었어요.
내심 '이거 괜찮네~'하며 엄마도 신이 나서
곰돌이랑, 아가랑, 엄마랑 셋이 같이 먹는 저녁밥 이야기를 떠들며 한끼 뚝딱 해결했습니다.

그 날 이후 우리집에 밥먹는 식구들이 늘었어요.
연수 식탁위에 작은 기린인형 혹은 사자인형이 올라와 함께 밥을 먹고 있습니다. ^^
엄마는 따로 밥차릴 일도 없고 이따금씩 '기린, 밥 많이 먹어라~'하고 말만 해주면 되는데
연수는 기린 밥먹이랴, 물먹이랴, 다먹고나면 양치시키고 데려다 재우랴.. 아주 바빠졌습니다. ㅎㅎ

아이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인형도 가지고 놀면서 제 어린시절을 생각했습니다.
종이인형, 종이음식들을 그리고 오리며 몇시간을, 아니 몇년을 정말 정신없이 놀았던...^^
현실에서는 입어보고, 먹어볼 수없는 것들을 그림으로 그려 종이인형에게 입히고 먹이면서
내가 실제로 입고 먹는것처럼 즐거웠지요.

좀더 나이가 든 뒤에는 상상의 욕구를 채우는 방법이 그림에서 책으로 옮겨갔었습니다.
책은 더 다양하고, 넓고, 흥미진진한 세계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지요.
전래동화와 옛날 이야기들의 세계, 빨강머리 앤과 큰숲사람들(초원의 집)의 세계, 
작은 아씨들과 지금은 제목을 잊어버린 핀란드 소녀의 이야기.. 
그 이야기들에 흠뻑 빠져 글로 묘사된 낯선 풍경을 상상하고, 등장인물들을 흠모하고, 동정하고..
때론 그 이야기와 사건과 풍경속에 내가 들어가있는 것을 상상하는 일은 또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
연수도 어린시절의 저처럼 그렇게 그림과 이야기속으로 하염없이 빠져드는 날들이 올까요..?

그림과 인형을 진짜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요 녀석에게 이제부터 펼쳐질 '상상의 세계'들이 기대됩니다.
엄마의 그림실력은 일천할지라도 아이가 상상하는 이야기와 풍경만큼은 더없이 다채롭고 풍성했으면...!
그 속에서 아이의 꿈도 한계없이, 막힘없이 자랐으면....
이제 겨우 두살 된 아이를 앉혀놓고 종이사탕 하나를 그려주며 엄마가 갖는 바램은 이다지도 거창합니다.
^^








'연수 없다~~!' 








'까꿍~!!!'  ^^








'엄마, 난 실은 다 알고 있다고~~ 엄마가 그려주는 종이사탕이랑 종이꽃이 가짜란거~~ 기린이 밥 안먹는것도 알아..
엄마가 재밌어하니까 나도 좋아하는거야'
언젠가는 철든 아이가 이렇게 말하는 날도 올지 모릅니다.
^^


+


내일부터는 새댁네도 추석명절을 쇠러 지방에 있는 시댁에 내려갑니다.
한번 내려간 김에 멀리 사는 손주가 늘 보고싶으실 할아버지할머니곁에서 일주일정도 지내다가 
똑순이 외가집에도 들러 올라오려고 해요.  
아직은 할줄아는 것도 별로 없고, 젖먹이는 아기까지 딸렸다고 명절노동에서 거의 제외되는지라
철부지 새댁은 딸랑딸랑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갑니다.    
아이와 늘 둘이 집에만 있다보니 길에만 나서면 여행같아서 살짝 설레기도 하고요..^^;;  
그러나 역시 집나서면 고생이겠지요...-.-
똑순이랑 건강하게 잘 다녀와서 뵙겠습니다. 따뜻하고 행복한 한가위 되시길..!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