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2017. 7. 5. 10:12


연제가 들고온 <말놀이 동시집>을 읽어주는데
'수박밭에 수박이'라는 동시 밑에 수박밭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가게에 진열된 수박을 보거나
수박을 사서 잘라 먹을때는 떠오르지 않았던 옛날 기억 하나가
눈코입달린 귀여운 수박 가족이 웃고있는 동시책 삽화 한컷에
확 떠올랐다.

대학교 3학년 때였나..
경북 영주로 농활가서 수박밭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허리가 90도로 굽은 할머니 한분이 땅을 기다시피 하시면서
수박순을 밭고랑에 잘 고정시키려고
얇은 철심을 반으로 구부려 만든 집게로
뻗어가는 순을 눌러주는 것을 도왔다.

그 날 그 할머니는 여러모로 나에게 충격을 주셨는데
온통 까맣게 흙물, 풀물이 들다 못해 닳아없어진 손톱과
마디가 모두 울퉁불퉁하게 꺽이고 휘어진 손이 그랬고,
90도로 휘어진 허리 뒤로 고추대에 묶어줄 하얀 비닐끈 타래를 묶고
고추밭 사이를 오가며 허리 뒤에서 실이 풀려나오게 하는 모습이
꼭 거미가 실을 뽑아내는 것 같았다.

고목처럼, 동물처럼
비틀어지고 닳은 몸.. 그렇게 일해야만 살아지는 삶.

할머니, 지금도 살아계실까.
할머니 수박밭에서는 지금도 수박이 자랄까.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