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2017. 7. 7. 11:48

연호랑 연제가 유치원에서 작은 새우를 받아왔다.
새우를 받던 날, 마침 내가 유치원 하원 시간에 데리러 갔는데
아이들이 모두 새우가 든 작은 플라스틱 통을 들고 공주님처럼 까치발을 하고 조심조심 살금살금 걷고 있었다.
통이 많이 흔들리면 새우가 힘들어서 죽을 수도 있으니 조심해서 집까지 가져가라고 선생님이 당부하신 것이다.

우리도 새우를 잘 모시고 집에 와서
조금 넓은 플라스틱 통에 자갈과 유리 장난감, 바닷가에서 주워온 조개껍질 같은 것을 넣어
새우 어항을 마련해주었다.

연호 새우는 좀더 빨갛고 큰 녀석, 연제 새우는 색이 투명하고 연한 빨강에 좀더 작았다.
둘이 밥 먹고 이리저리 어항 속을 기어다니며 한 보름 잘 지냈다.
아이들은 첨엔 하루에도 몇번씩 새우를 들여다보더니 나중엔 아예 까먹는 날도 있고, 그러다 문득 또 새우들이 뭐하나 살펴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새우어항 물을 갈아줬는데
하루이틀 있다 들여다보니 연호 새우가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새우는 죽어있었다.

마음속으로 아이들에게 어떻게 얘기하지.. 생각하면서 하루이틀이 흘렀다.
연호가 많이 속상해할텐데...

처음에 각자 담겨온 통 안에서 혼자 며칠을 지냈던 새우들은
큰(?) 집이 마련되고 두 녀석이 함께 지내게 되자 훨씬 활발하게 움직이고 같은 곳에서 함께 몸을 맞대고 있는 모습도 자주 보였었다.
그렇게 지내던 한마리가 죽었으니
죽은 새우도 가엾고 남은 새우가 외롭고 슬플 것도 걱정이 되었다.

내가 물 갈아줄때 잘못해서 큰 새우가 다쳤나..ㅜㅜ
조심할껄.. 반성하고 미안해하며 어쩌지는 못하고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아이들은 새우를 별로 안들여다보는 것 같았는데 연수인가 연제가 무슨 얘길하다가 "근데 참, 연호 새우 죽었더라"하고 지나가는 말투로 말하자
연호도 대수롭지 않게 "응. 엄마, 내 새우가 죽었어"하고 얘기하는 것이었다.
"그래ㅜㅜ 며칠전에 엄마도 봤어..."하고 그날 대화는 끝났다.

엊그제 내가 다시 새우어항 물을 갈아주면서 죽은 새우를 꺼내
연호가 유치원에서 받아와 키우고있는 나팔꽃 화분 흙을 살짝 파고 묻어주었다.
아주 작은, 어른 엄지손톱만한 작은 새우라 손가락으로 판 구멍이면 충분했다.

'예쁜 나팔꽃으로 피어나렴.. 다음 생엔 생명 가득하게 태어나라'

그날 저녁에 세녀석이 잠자리로 갈때
연호에게 나팔꽃화분에 새우를 묻어주었고, 새우가 꽃으로 태어날지도 몰라.. 했더니 연호는 제 나팔꽃 화분에 가서 흙을 뒤적여보기도 하고 한참 그앞에 앉아있었다.
그런데 요즘 연호는 나팔꽃에 진딧물이 생기는 것땜에 걱정이었는데
한 생명이 죽으면 다른 생명으로 태어난다는 얘기를 전에 나랑 한적이 있어서 그 생각이 났던지
"엄마, 새우가 진딧물로 태어나면 어떡하지?"하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으..응. 그럴수도 있겠지..만 새우는 나팔꽃을 잘 자라게 도와줄꺼야. 꽃이 될수도 있고.. 혹시 진딧물로 태어나면... 밭에 데려다주자.. 거기서는 진딧물도, 나팔꽃도 잘 살껄..." 딱히 뭐라고 해야할지 몰라 이 말 저 말 나오는대로 하며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연호가 울기 시작했다.

형과 동생이 잠들고도 한참동안 연호는 훌쩍훌쩍 우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가 가서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연호야, 새우가 진딧물로 태어날까봐 걱정돼서 우는거야?"하고 물었더니
연호는 "아니.."했다.

"그럼 왜 울어..?"
"새우가 죽어서 슬퍼... 내 새우..." 하고 오래오래 울었다.

그래.. 한번은 이렇게 울어야지..
아무렇지 않은듯 넘어갈 수는 없지. 마음은 그런 것이 아니지..

유치원 선생님이 내일모레 새우를 줄거라고 하셨을 때부터 많이 기다렸던 연호였다.
내게 미리 물을 받아놓으라고 부탁하고
새우 집할 어항도 찾아놔달라고 하고,
제 새우도 너무너무 좋아했다.

어리니까 아직 그렇게 잘 돌볼 수는 없다해도
마음 깊이 새우를 좋아했다.

새우가 죽고, 그래도 어항 속에 있을 때는 조금 덤덤하게 넘길수도 있었다가
땅 속에 묻었다고 하고, 다른 생명으로 태어날 거란 얘기를 나누는 동안 제가 좋아하던 새우가 이제는 떠났다는 사실이 깊이 느껴져서 연호는 그날밤에 아주아주 슬프게 이불위를 뒹굴며 울었다.

사는 일이, 이별하는 일이 이렇구나..
우리 삶이 그렇구나..

잠든 연호의 얼굴에 어린 눈물자욱을 닦아주며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함께 있는 날들에 사랑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

다음날 연호는 평소처럼 일어나 웃으며 유치원에 갔고,
나는 텃밭에 가서 이엠발효로 만든 병충해 방지 약재를 한병 떠왔다.
연제 강낭콩에서 시작된 진딧물이 연수 토마토, 연호 나팔꽃에 조금 옮겨왔다.
연제 강낭콩은 다섯 꼬투리 수확해 밥에 잘 앉혀 먹고 대는 뽑았고, 나필꽃과 토마토에는 약을 뿌려봐야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