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동물원에 갔다.
연호 태어난 후로는 처음 가는 것이라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부모도 살짝 들떴다.
집에서 가까운 어린이대공원. 
처음 만난 동물은 북극곰이었다.











북극곰은 자고 있었다.
초가을 한낮은 아직 무덥다. 
물은 시원해보였지만 회색 페인트가 칠해져있는 시멘트 우리는 적적하고 답답해 보였다.


한참 들여다보던 연호가 말했다. 

"북극곰 감옥이네--"


감옥이란 말의 뜻을 네살배기가 제대로 알까?
정확히는 모르지만 형과 레고놀이 같은걸 하며 '감옥 어쩌구' 하며 놀던 것 같기도 하다.
뭔가 꼼짝못하게 가둬놓는 곳이란 느낌은 알고 있나보다.

나가 놀 수 있는 마당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산책하고 친구도 만나고 사냥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아 기르고... 
'집'은 그럴때 쓸 수 있는 말이라고 한다면..
엄마는 네 말이 맞다고 할 수 밖에 없겠구나.


"엄마, 북극곰이 감옥에 갇혔어"

연호말에 나는 '그래... 가엾다..' 대답했다. 









연호는 꿀우유를 좋아한다.
뜨거운 꿀차에 찬 우유를 섞어서 미지근하게 만들어주면 한컵을 단숨에 다 마신다.

며칠전 꿀우유를 마시다말고 연호가 물었다.


"엄마, 꿀은 벌이 농사지어서 우리 먹으라고 준거야?"


친가와 외가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농사지어서 보내주시는 쌀, 감자, 고구마 같은 것을 먹을 때, 
한살림 농부 아줌마아저씨들이 키워준 채소, 과일을 사먹으면서 한 얘기들을 기억하고는 
꿀은 벌이 우리를 위해 '농사지어서' 준 거냐고 묻는다.

 
"음.. 글쎄..^^;; 벌이 꽃에서 꿀을 얻어와서 자기 집안에 모아놓는데. 사람들은 그걸 얻어서 먹는 거란다."


"엄마. 나는 다시 태어나면 그때는 '벌띠'로 태어나고 싶다. 난 벌이 좋아.. 꿀을 주니까."


시원하게 한컵 들이키더니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아니야, 나는 물이 제일 좋아. 그러니까 이 담에는 '물띠'로 태어날거야, '물띠'~!!" 











연호가 맨처음 좋아했던 동물은 거북이였다. ^^
꼭 연호 같다. 조심스럽고, 꼼꼼해보이는 것이.
자기 띠인 '토끼'도 좋아하는데, 맛있는 꿀을 주는 것이 고마워서 '벌띠'도 되고싶고, '물띠'도 되고싶은 이 엉뚱한 네 살이라니.


오늘은 공룡 책을 함께 보다가 '주로 물가에 살았다'라는 문장을 듣고는 "물가가 뭐야?" 하고 물었다.

'물가는.. 강물이나 호수처럼 물이 많이 있는 곳, 그런 곳 가까운 땅이야.. 이 공룡은 그런 곳을 좋아했나봐..' 했더니

"아~ 우리 동네 냇가 같은데~?" 하고 아는 곳이 나와 반갑다는 투로 말했다.
 
그러고는 은밀하게 이어놓는 이야기.


"엄마, 사실은... 내가 엄마 배속에 있을때, 그 때 공룡들이랑 같이 놀았다~?!
내가 밥도 주고, 같이 놀기도 하고 그랬어..."



엄마는 끔뻑 넘어가서 '정말~~?' 하고 묻고 연호는 철썩같이 '응!'하고 대답하던
조용한 한낮을 오래 기억해두고 싶다.









엄마사슴, 아기사슴.

파리들이 사슴들을 너무너무 귀찮게 하고 있었다. 

파리를 뗴어내느라고 사슴들이 사시나무처럼 털을 온통 곧추세우고 파르르 파르르 떨고있었다. 잠시 날아올랐다 그래도 달라붙는 파리들, 파리들.


동물원은 고통스러웠다.

동물들은 너무 아름다웠는데, 갇힌 그들의 무력하고 멍한 모습은 차마 보고있기 힘들었다.

동물원에서 멀리 벗어나 오래된 나무들이 서있는 대공원의 다른 한구석에서 그나마 마음이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동물들에게 죄를 짓는 동물원은 그만 하는게 좋지않을까.. 싶었다. 

동물을 보고 싶고, 만나고 싶다면 멀찍이 떨어져서, 그들이 살 수 있는 큰 숲이나 초원을 주고 멀리서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초식동물들은 최소한 큰 목장에서 조금은 더 자유롭게 방목하며 키우고, 아이들이 찾아가면 먹이를 줄 수 있는 정도로만..

좁은 우리속에 가둬놓고 사육하며 구경하는 방식은 지양했으면 좋겠다. 

코끼리도, 북극곰도 본래 제 고향으로 돌려보내주자고 하면 온난화로 빙하가 붕괴돼 멸종위기에 처한 북극곰에게는 더 가혹한 일이 될까.

그래도 더이상 감옥에 갇힌 북극곰을 만나고 싶지는 않다.

슬픈 북극곰. 

그 슬픔에 내 슬픔을 기대고 싶을만큼 정말 아름다웠고, 그래서 또 보고싶지만.. 이렇게 보고싶지는 않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