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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2016. 8. 1. 00:43

이 집에 사는 동안 참 좋았다.

서울시 강동구 강일동 고덕리엔파크 106동 403호.

결혼해서 두번째 살았던 집.
2011년 이른봄 네살된 연수와 배속의 연호를 데리고 들어왔던 집.
5년 하고 반년을 더 사는 동안
연호가 태어나 여섯살이 되었고
연제가 태어나 네 살이 되도록 자란 집.



이 집을 내일 떠난다.
아름답고 좋았던 많은 추억이 담긴 집을 떠나는 것이 슬퍼서
아이들도 나도 여러번 울고 아쉬워했다.

고마웠다.
참 고마웠다.
이 집에서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랐고
남편도 나도 무탈히 서로 보듬어주며 지냈고
다정하고 좋은 이웃들과 깊은 사랑과 정을 나누며 살았다.




앞마당이 내려다보이던 4층 우리집 거실 창가에서
아이들은 비둘기 밥을 주고
친구들과 동네 이모들을 열심히 불러 손을 흔들고
나는 학교에 가는 연수와 친구들의 자그마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서있곤 했다.

저녁노을과 달을 올려다 보기도 하고
고덕천 쪽으로 바라보이는 먼산을 보며 오늘은 미세먼지가 어느 정도일까.. 가늠해보기도 했다.
먼지를 생갓하면 마음 아팠지만 산을 바라보면 언제나 행복했다.
작은도서관 앞을 살피는 일도 즐거웠다.
약속한 누군가가 와서 기다리고 있으면 '금방 갈께요~!' 소리치고 뛰어갈 수 있던 집.



처음 이사왔을 때는 답답한 벽으로 느껴지던 105동 건물은
이제 올려다보면 한층한층 누구네 집인지 거의 다 알게되어
불빛이 켜져 있으면 반갑고 꺼져있으면 어디 갔나.. 궁금해지는 다정한 친구들 집이 되었다.




참 좋은 시절이었다.
갓난 아기들을 품에 안고 젖을 먹이고 업어재우고
그 작은 손을 잡고 걸음마를 함께 하고
막내가 네발 자전거를 씽씽타고 동네 형들과 신나게 놀러다니도록 자란 시간.

아이들과 많이 놀았고, 함께 고덕천 길과 오래된 성당 마을과 강명초등학교 오가는 길을
많이 걸었고, 텃밭을 일구고
한 2년 남짓은 작은도서관을 내집처럼 오고가며 마을 친구들과 재미있는 일들을 여럿 하고,
울고 웃고 사랑하며 살았다.



금요일에 도서관 친구들이 송별회를 마련해 떡과 꽃을 주셨고,
오늘 연호가 고덕천에서 놀다와서는 제가 만든 꽃다발을 선물로 주었다.

고운 꽃들처럼 고운 추억을 안고
이 집을 떠난다.
정들었던 사람들, 아름다운 한시절과 이별하는 일은 내가 평생 해온 일인 것만 같은데
이제는 서른 아홉.
뒤돌아보지 않고 바쁘게 떠나가는 일은 그만 하고 싶다.
오래오래 뒤돌아보고 싶다.
떠나온 것 안에 지겹도록 미적거리며 앉아있어보고 싶다.
이사에 임박할 때까지도 마음이 잘 잡히지 않았다.
마음을 무겁게 하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
그 일을 한사코 외면하면서 딴일로 꾸역꾸역 시간을 채우는 버릇이 있다.
자꾸 그런다.
왜 그럴까.
뭐가 두려운 걸까.

내가 잃고 가는 것이 무엇인지,
지금 내 마음은 어떤지
외면하거나 묻어버리지말고
천천히 조금씩이라도 마음이 하고픈 말을 들어주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 마흔이니까.. 할수 있지 않을까.



내일이면 떠난다.
정든 집, 정든 마을, 정든 이웃들.

덕분에 살았습니다.
보살펴주시는 마음들, 기울여주는 애정들, 이 터전에 깃든 좋은 기운들, 멀리서 보내주시는 한결같은 기원들.

그 덕분에 저희 다섯, 잘 살았습니다.
앞으로도 잘 살겠습니다.
사랑하며, 나누며, 보듬으며
천천히 꾸준히 성장하며
저희 다섯 새 보금자리에서도
포근히 깃들어 지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모두모두 정말 고맙습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