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4.04.25 조용히 반기들고 살아가기 6
  2. 2014.04.14 앗 실수
  3. 2014.04.04 병원다녀온 날 9
이웃.동네.세상2014. 4. 25. 16:37



아침밥 차리는 엄마 옆에 세 녀석이 옹기종기 붙어서 놀던 중에.


연수: 엄마, 우리 이제부터 말 끝에 다 '파워~!'붙여서 말하기 하자!

연호: 좋아! 나도 할래~!

엄마: 그래.

연수: 그래~파워! 해야지!

엄마: 알았어~파워.

연수: 엄마, 사랑해~파워!!

엄마: ^^.. 엄마도 사랑해 파워.

연호: 사랑해 사랑해 똑같은 말 두 번하기 없기야!

연수: 아니야, 있어. 사랑해 사랑해 두번 하기 있지이~~~(엄마)?

연호: 으응~!! 있지이!


쿡. 웃음이 터졌다.

방금전까지 제가 같은 말 두번 하기 없다고 해놓고, 

형이 동의를 구할 때마다 쓰는 '있지이이~~?' 하고 말꼬리를 길게 늘리는 말투로 물으니 저 한 말은 금새 까먹고 '으응~~!'하고 맞장구쳐주는 네살배기 연호가 귀여워서 웃었다.

엄마한테 '사랑해에~ 파워!'하고 외쳐주는 일곱살 아들이 고마워서 웃었다. 

형들 따라 '우오우오아으~'하고 뭐라뭐라 저도 얘기하는 꽃같은 막내둥이가 예뻐서 웃었다.


웃다가 다시 심장이 읔. 하고 아팠다.

이렇게 예쁜 아이들인데.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죽은 것이다. 

이렇게 살 부비고 안아주며 키워온 자식을 하루 아침에 잃은 것이다.


세월호 사고 후 열흘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계속 지금 내가 서있는 현실과 지금 이 순간 진도 앞 바다에서 수많은 부모들이 멀쩡히 두 눈 뜨고 자식을 잃으며 오열하는 도무지 현실같지 않은 현실 사이를 오고가며

웃다가 울다가 멍해졌다가 가슴이 쓰렸다가 분노했다가 절망하기를 반복했다.

참담했다.


내 눈앞에서 뛰어 놀고 웃고 먹고 잠들어있는 아이들을 쳐다보다가 

초록 잎사귀가 어느새 무성해진 봄나무들과 꽃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문득 가슴이 저며와 숨을 골라야했다. 


우리는 모두 저 시간 뒤로 돌아갈 수 없다.

세월호 사고가 일어나기 전으로. 


차가운 물속에 우리 심장의 한 부분을 담궈둔 것처럼 

그렇게 시시때때로 오싹해지는 추위와 소름을 몸의 일부로 붙이고 살아갈 것이다.


아이들 키워온 칠년동안

거의 보지않았던 뉴스를 매일밤 아이들 재운 후 컴퓨터를 켜고 보았다.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JTBC 뉴스9 을 가물거리는 눈을 부릅뜨고 본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그동안 너무 데모를 안했구나' 하는 반성을 혼자 했었더랬다. 

내가 무슨 대단한 운동가라는 말이 아니다. 

그저 평범한 한 명의 소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해야하는 작은 동참, 

비상식적인 일들에 문제 제기하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기위해 함께 즐겁게 시도하고, 정당한 목소리를 모으고, 잘못된 일들을 바로잡기위해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일 같은 것을 너무 방기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내 아이들 키우는데만 급급하고 바빠 

다른 아이들을, 내가 속한 사회를 바라보고 참여하는데 게을렀던 것을 반성했다.


아이들을 잃고.. 나는 부끄럽다.

너무나 미안하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 것이다.

조용히. 내 자리에서. 반기를 들고. 

 






Posted by 연신내새댁



오늘 연수 친구 소정이네가 놀러와서 함께 저녁을 먹고 갔다.

소정이는 연수 네 살때부터 단짝 여자친구인데 요녀석이 나이보다 늘 조금 더 성숙하다.

연수 장난감중에 뭐 하나가 아주 재밌었는지 들고와서 나에게 귀속말로 물었다.


"이거 빌려가도 돼요?"


나도 작게 대답했다.


"연수한테 물어보렴"


다시 귀속말.


"이거 빌려가도 되냐고요~?"


다시 속삭임.


"연수한테 물어봐~"



오랫만에 친구가 집에 놀러와서 함께 저녁을 먹으니 연수도 신나서 잘 먹고

연호랑 연제도 덩달아 신나서 잘 어울려다니며 먹고 놀고

나도 아빠가 늦어 혼자 힘들뻔했던 저녁이 오히려 유쾌하게 잘 마무리되었다.

소정이는 연수가 빌려준 장난감을 들고 흐뭇하게 돌아갔고, 연호와 동갑인 소정이 여동생과 소정이 엄마도 잘 놀고 잘 먹고 간다며 웃으며 인사하고 갔다.



아이들 재워놓고 집치우는데 아차 싶었다. 


대답을 잘못 했네..



"그럼~ 빌려가도 되지. 그래도 연수 장난감이니까 연수한테 한번 더 물어봐줄래?"


했어야 하는데.



아무리 요녀석이 그전에 연수 장난감을 빌려갔다가 한번 잃어버린 전적(?)이 있다해도, 

아무리 고 장난감이 연수가 좋아하는 것이라 해도,


간절히 기대하는 어린 마음에게 그렇게 대답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미안하다, 소정아...



"그럼~" 하고 대답하는 연습을 더 해야겠다. 


그럼, 되고말고~

그럼, 되고말고~



어린 마음들을 안아줄 수 있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4. 4. 4. 00:18



봄비 젖은 길 위로 가로등 불빛이 반짝인다.

이런 밤에는 사는게 참 별스럽지 않다. 

다 괜찮아.. 비에 젖은 돌들이 말해주는 것 같다. 


며칠전 남편이 하루 휴가를 내고 나와 아이들을 태우고 병원에 가주었다. 

자궁암 정기검진도 받을 겸 최근 들어 더 심해진 자궁 통증에 대한 진찰을 받기 위해서였다.

연수는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연호와 연제만 태우고 꼭 1년 전에 연제를 낳았던 산부인과병원으로 가는데

가는 중에 차에서 두 녀석 다 낮잠이 곤히 들었다. 

병원옆 골목에 차를 세우고 남편은 잠든 아이들과 차에 남고 나 혼자 병원으로 올라갔다.


평일 오전의 산부인과병원은 한산했다.

자연출산을 지향하고 지원하는 병원인 연앤네이쳐 산부인과의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 앉아있자니 

연제 낳던 일이 좋은 꿈처럼 아련하게 떠올랐다. 


마음 깊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의료인과의 면담을 기다리며 진료실 앞에 조용히 앉아있는데 눈물이 왈칵 솟았다. 

나는 두 손을 가만히 모아 잡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제 아이들 곁을 지킬 수 있게 해주세요. 큰 병이 아니게 해주세요.'


겁을 많이 먹고 있었다.

나는 본래 응석도 많고 엄살도 많은 사람인 탓에 내 몸 어디가 좀 아프면 내심 걱정을 많이 한다. 

그래도 어린 아기들이 줄줄이 딸린 몸이라 내 몸 살펴보러 병원가기가 쉽지가 않았다.

이번에도 우선은 참으며 남편이 쉬는 토요일을 기다리려했는데 갑자기 통증이 너무 심해져서 어쩔 수 없이 남편에게 휴가를 내자고 했다.


연호 낳고 난 뒤부터

가끔 피곤할 때면 연수, 연호 낳으며 수술했던 자리가 뜨끔뜨끔하게 아프곤했다. 

연제는 다행히 수술하지 않고 자연출산으로 건강하게 잘 나아서 내 몸도 한결 든든하게 잘 회복되었었다.
그래도 1년 시간이 흐르는 동안 몸이 많이 고단할 때면 큰 아이들 수술했던 자리도 아프고, 나중에는 자궁 전체가 뜨끔뜨끔하게 아팠다.
최근에는 바늘로 찌르는 것같은 통증이 수시로 찾아와 한참씩 가만히 앉아서 숨을 참고 기다려야 그 밑이 빠질 것 같은 통증이 가셔지곤 했다. 


통증이 너무 잦고 심해지던 어느 날, 주말을 바라보며 계속 참을까.. 생각하는데
친정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빠가 아셨다면 당장 병원에 가보지 않는다고 크게 걱정하셨을거다. 
큰 병은 아닐 것 같지만, 하루이틀 병원에 빨리 간다고 크게 달라질 건 없겠지만 
왠지 아빠 생각을 하니 더 끌지말고 빨리 다녀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픈 것을 참으며 지내던 며칠 동안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괜히 겁이 났다.
내가 아프면 이 아이들은 어쩌나..
젖먹이 연제는, 아직도 엄마 품에 안겨야 잠이 드는 네 살 연호는, 엄마한테 사춘기 아이처럼 한창 까탈을 부리고 있는 일곱살 연수는.  

내가 아프면 안 되는데... 이 아이들 곁을 지켜야하는데.. 하는 걱정으로 잠을 못 이루기도 했다.

몸이 아프니 마음도 약해졌다.



진료실 앞 의자에 혼자 조용히 앉아 이런 걱정들을 갈무리하고, 기도하고, 깊이 심호흡하는 동안 

눈물이 잠시 왈칵했다 잦아들었다. 

밝고 따뜻한 빛이 흐르는 복도에는 다행히 나 혼자 뿐이었다. 


진찰 결과는 좋았다.

걱정했던 큰 병의 징후들은 없었고, 며칠 후에 결과가 나온 자궁암 검사도 정상이었다. 

다만 오래 서 있고, 많이 피곤해서 그런 것 같다고, 좀 쉬시면 좋아질 거라는 이야기를 하며 선생님은 웃었다. 

아기 셋을 데리고 쉴 수 없는 내 상황을 잘 아시니 미안해서 웃는 것이다.

나도 웃었다. 

걱정이 풀리니 마음이 푹 놓였다. 

괜찮다. 생활은 조금씩 조절할 수 있다. 큰 병만 아니면, 내 아이들을 내 손으로 돌보며 

같이 밥먹고 웃고 산책하는 일상을 탈없이 꾸려갈 수만 있다면 다 괜찮은 것이다. 정말 다행이다. 


선생님은 몇가지 집에서 할 수 있는 운동과 잘 쉴 것을 당부하셨다.

괜찮을 거라며 너무 걱정말라고 나를 안심시켜주려 애썼지만 내심 걱정을 많이 하고 있었을 남편도 

밝은 내 표정을 보고 마음이 확 펴진 듯했다.


봄날씨가 참 좋았다. 

연수없이 동생들만 데리고 외식하는게 어색했다.  

모처럼 평일 낮에 직장인들로 북적이는 맛있는 식당에 앉아 경쾌한 음악을 들으며 밥을 먹고 있자니

봄소풍나온 아이처럼 마음이 들떴다.

살아있으니 좋고, 함께 있으니 좋다.

점심먹고 병원에서 멀지않은 세곡동 살림언니에게 들려 따뜻한 놀이터 햇볕을 받으며 맛있는 커피도 한잔 마셨다.

삶이 사람의 품을 얼마나 키워줄 수 있는지 나는 늘 언니를 보며 배운다.

 

오후에는 남편이 나를 쉬게 해주려고 연수와 연호를 데리고 놀러를 나갔다.

세 사람이 마트에 가서 장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는 동안

나는 연제랑 둘이 좀 놀다가 같이 오래도록 낮잠을 잤다.

집이 절간처럼 조용했다. 


잠든 연제 옆에서 문득 생각했다.

언젠가 아이들이 많이 자라면 아빠랑 아이들이 함께 여행을 떠나는 날도 있겠지.

그러면 나 혼자 집에 남겠네.

아. 생각만 해도 설렌다. ^^

더도 말고 딱 삼일만 그런 날이 있었음 좋겠다. 

그럼 나는 뭘 할까..

혼자 느긋하게 일어나서 

그릇을 딱 한개만 써서 밥을 먹고

혼자 영화도 보러 가고

친구를 만나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또 조용히 집에 와서 혼자 자고..

또.. 

삼일 이상 되면 외로울 것 같네. 


그러다 혼자 있을 때 해보고 싶은 것이 또 하나 생각났다.

혼자 조용히 고속버스를 타고 

강릉 부모님께 가서 하루밤만 자고 와야지.

늘 아이들 북적부적 데리고 정신없이 왁자하게 가서 엄마아빠 혼을 쏙 뺴놓고 오는 거 말고

나 혼자 조용히 가서 

엄마아빠 맛있는 밥 사드리고

커피 같이 마시고

두런두런 얘기하다가 

엄마아빠 옆에서 하룻밤만 자고 와야지.


그러고나면 다시 남편과 삼형제가 있는 

시끌벅적한 내 일상이 다시 시작되어서

씩씩하고 즐겁게, 화도 내고 속도 끓이고, 와글와글 울고웃으며 

보통의 하루하루를 살아갔으면 좋겠다.



몸이 아픈 것은 어떤 신호다.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생각하면 다 신호이기도 하다.

균형이 깨졌다고, 좀 과하다고, 무리하고 있었다고

좀더 천천히, 마음도 몸도 푸근하게 한 템포 늦추라는 신호. 

밖으로 끌어내기 바빴던 에너지를 

안으로 지긋이 좀 모아들이기도 하라는 신호.


병원에 다녀온 후 신기하게도 통증은 많이 덜해졌다.

지금은 거의 없어졌다.  

며칠동안 생각날 때마다 케겔운동을 했는데 통증이 스르르 가시는게 느껴졌다. 

아픈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병을 호소하고, 그에 대한 관심과 위로를 받고 싶어 병원을 찾고 

의료진으로부터 공감과 심리적 위안을 얻기만 해도 치유의 효과가 있다더니 정말 내가 딱 그 경우였다.  


아마도 나도 이 즈음에 사람들로부터 더 관심도 받고, 따뜻한 보살핌도 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니,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나 자신이 내 몸에 좀더 관심과 보살핌을 보내줘야하는 때였던 것 같다.

새 생명을 낳고 보살핀 일 년. 

스스로를 돌아보며 애썼다고, 잘 해왔다고, 앞으로도 힘내라고 다독다독해줘야겠다.

세 번째 엄마 노릇이라고 

이젠 어려울 것도 없이, 좀 더 능숙하게 잘해야 하는거 아니냐고 몰아가기엔 

여전히 벅차고, 오히려 조금 더 빨리 지치는 

나이들고 약해진 엄마 전욱이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지금 내 아이들과 함께 있으므로. 

여전히 실수하고 부족하지만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함께 웃으며 껴안을 수 있으니까.




애벌레 찰리 - 10점
크리스토퍼 샌토로 그림, 돔 드루이즈 글, 강연숙 옮김/느림보


"풀잎을 한입한입 갉아먹으면서 바람이 속삭이는 소리와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었지요.

찰리는 이 세상에 살아있는 게 기뻐서 미소 지었어요."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