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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4.03.22 무섭게 말해야
하루2014. 3. 26. 22:44




- '마법사 모자'를 쓴 연호. ^^




며칠전에 옷장을 뒤적거리다가 처녀시절에 입던 치마를 찾아서 꺼내 입었다.

연제 낳고 1년 사이에 살이 많이 빠져서 처녀시절 옷들이 다시 맞는다. ^^ 

레깅스 위에 입으니 편하고 이쁜 평상복이 되었다.


연수랑 연호랑 '엄마 예쁘다~~'며 와서 안기고 웃고 만져보고 하더니 

연호 하는 말.



"와~ 엄마, 예쁘다~ 공주 같아! 우리 엄마가 '공주 엄마'가 되었네!"



회색 치마 한 벌로 단숨에 '공주'가 되다니.. 역시 엄마는 좋구나. ^^



"엄마, 엄마 <겨울왕국>에 엘사 같아~, 엄마는 엘사 해, 나는 안나할께! 언니! 언니~!" 



'언니, 언니' 부르며 매달리는 둘째 아들의 꽃처럼 곱고 어린 얼굴을 바라보면서 

정말로 공주 부럽지 않은 행복을 내가 지금 누리는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뭉클했다. 



아이들은 엄마를 참 좋아한다. 

어쩌면 그리도 절절한 사랑을 보내주는지...

엄마가 한 삼일 머리를 안 감아도, 이 사이에 빨간 고추가루가 끼어있어도, 젖이며 반찬 얼룩이 묻은 티셔츠를 며칠째 못 갈아입어도

아이들은 그런 엄마 품에 한번이라도 더 안기고 싶어하고, 엄마 얼굴에 뽀뽀하고, 엄마 옷에 머리를 묻고 엄마 냄새를 맡으며 좋아한다.


어린 아이들의 그 부대낌과 매달림이 고단하고 힘들다가도 

문득 '엄마가, 내가 그리 좋을까.. 요 녀석들이 언제까지 요렇게 엄마라면 무조건 좋아 좋아! 하고 안겨올까' 생각해보면

이 시절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음을 알겠다.

그래서 지금의 이 조건없는, 절절한 사랑이 가슴 뻐근하게 고마워진다.


일곱살 연수도 아직 엄마를 다른 사람과 비교할 줄 모른다. 

제 엄마가 그냥 제일 좋을 뿐이다.

다른 엄마들처럼 예쁘게 화장도 하지 않고, 옷도 맵씨나게 입을 줄 모르는 엄마인데도 

그저 세수만 해도, 머리만 한 번 빗어도 '우리 엄마 참 예쁘다'고 감탄하고 (ㅎㅎ;;;) 

젖먹이 동생을 달고 후즐근한 차림으로 정신없이 하루를 살아내는 엄마에게 '엄마 사랑해' 하고 매일매일 몇 번이고 말하고 안아주는 아들이다. 


조금 더 크면 엄마가 그리 예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아들들도 알게 될 것이다. ㅎㅎ 

사내녀석들이니 곧 엄마를 어색하게 느끼고, 끌어안고 볼부비는 일 같은 것은 더욱 쑥스러워하는 날이 금방 오리라.

엄마의 옷차림에 대해 토를 다는 일같은 것도 없겠지만, '엄마, 공주같아~!'라고 감탄하는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아이들이 이렇게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말들을 쏟아내는 이 시절에

나도 좀 더 예쁘게, 곱게 입고 

고운 아이들의 손을 잡고 같이 산책하고 안아주고 입맞추며 지내야겠다. 

진짜 공주처럼, 

우리집에선 엄마가 공주인 것처럼 말이다. 

발걸음도 경쾌하게 사뿐사뿐 걷고. 

^^






엄마가 좋아 - 10점
마지마 세스코 그림, 마도 미치오 글, 이영준 옮김/한림출판사





연호가 '공주 엄마' 얘기를 한 날 저녁에 이 그림책를 다시 보는데 

그림책에 나온 많은 '동.식물 엄마'들의 모습이 새로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들이 다 참 예뻤다.

곱고 아름답고 우아했다.

아기들 눈에 비친 엄마들은 꼭 그렇게 보일 것 같다.


사실로도 그렇다.

젊은 엄마의 시절, 이 시절을 사는 모든 생명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새로운 생명을 낳고 키울 수 있는 젊고 건강하고 강인한 몸과 마음을 가졌기에

어린 생명을 돌보는 어렵고 고단하고 긴장된 날들이지만

울다가도 눈물닦고 다시 일어나 

새끼들 입에 밥을 넣어주고 

새끼들을 향해 눈부시게 웃어주고 안아주며 

기꺼이 어미로서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미숙하고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배움과 깨달음과 행복이 차곡이 쌓이는 

젊은 엄마의 날들을 살다가 

새끼들이 그 어미만큼 아름답게 자라나면

그때는 그토록 빛나던 젊음과 아름다움과 강인함을 내려놓고

조용히, 낮게 내려앉는 것. 

그것이 모든 생명이 밟아가는 성숙의 길인 것 같다. 



엄마가 되고보니 길을 가면서 엄마들 얼굴이 눈에 제일 많이 들어온다. 

씩씩한 얼굴, 지친 얼굴, 화난 얼굴, 행복한 얼굴.. 

내 얼굴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 모두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오늘 들었다.

조금 더 씩씩하게 같이 웃었으면 좋겠다. 

꽃처럼 고운 아가들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는 그 아가보다 더 예쁜 엄마들!   





 






Posted by 연신내새댁


1. 무섭게 말해야



한동안 연수가 연호에게 무섭게 윽박지르며 말을 할 때가 있었다.

아직 어린 동생이 말귀를 잘 못 알아들어서 같이 놀다가 답답할 때도 있고, 

또 제가 시키는데로 하지 않아서 화 날 때도 있겠지.. 

그래도 지난 겨울 어느 맘때는 너무 심하다 싶게 거칠고 화난 말투에 '안그러면 나한테 맞는다'같은 협박과 위협의 말들이 자주 이어졌다. 

걱정이 되었다. 


'연수야, 연호한테 왜 그렇게 무섭게 말하니? 연호가 너무 무서워 하쟎아... 무서워서 네가 하자는 것도 잘 안하고, 형이랑 같이 놀기 어려워하는 것 같은데.. '

 

연수가 말했다.


'무섭게 말해야 말을 잘 듣는거 아냐?'


나는 놀랐다.


'아니야... 무섭게 말하면 듣는 사람이 겁이 나고, 무섭게 말하는 그 사람이 싫어지기도 해.. 그러면 같이 놀고싶지 않지.. 다정하게 말해주고, 잘 알려주면 그 사람이 더 좋아져서 말도 잘 듣고 함께 잘 놀 수 있어.. 너도 엄마가 너한테 무섭게만 말하면 좋겠어?'


'아니.' 


'그래, 연호도 네가 좀 답답하더라도 차근차근 가르쳐주고, 다정하게 말해주면 훨씬 잘 알아듣고, 너한테 배워서 같이 잘 놀 수 있게 될거야. 또 우리 형아 참 좋다 할거고.'


'알았어' 하고 대답하는 연수에게 몇가지 말을 더 하고 싶었지만 참기도 하고, 못하기도 했다. 


참은 말은 '자꾸 무섭게 말하면 말하는 사람 얼굴도 그렇게 무서운 얼굴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었고, 

못한 말은 '엄마가 너희들에게 자꾸 무섭게 말해서 미안해' 였다.



어른이 아이에게 무서운 얼굴로 화를 내며 무섭게 말하면 

아이는 다른 아이에게 똑같은 얼굴로 똑같이 말한다.

아이들이 저희들끼리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른이 섬뜩해질 때가 있다.

아이들의 세상을 어른들의 축소판같이 만들면 안된다.

어른들끼리는 오히려 조심하고 예의를 차리면서 아이들에게는 유독 쉽게 화를 내고 못되게, 무섭게 굴기도 한다. 

아이들이 약자여서 그럴 것이다. 

말을 잘 듣게 하겠다고 수시로 협박하고 위협하고 화를 내고 거칠게 대하고 공포를 조장한다. 

누가 내게 그렇게 대한다면 너무 끔찍할만한 일을 어린 아이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을 때가 많다. 

어른도 힘들어서 그렇다, 아이들하고 지내는게 얼마나 힘든데... 하고 항변하고 싶지만

어른이 아직 진짜로 성숙한 사람이 되지 못해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이 어른답게, 자기를 돌아보고, 추스르고, 감정을 조절하고 

포용. 존중. 이해. 배려. 공감. 기다림 그리고 웃음 같은 고귀한 능력들을 멋있게 사용하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은 어른에게 이런 것을 일깨워주려고 온 것이 분명하다.

성숙한 사람이 될 기회를 주려고.. 

진심으로 행복한 시절을 저희들과 함께 살아보게 해주려고.











2. 첫 문장



여섯살쯤부터 연수가 글자에 흥미를 보였다. 

어린이집 신발장에 붙어있는 제 이름자를 익힌 뒤에는 신나게 아무데나 제 이름 쓰기를 좋아했다.

학습지나 한글공부를 따로 하진 않았다. 

하고싶은만큼, 관심가는만큼 자연스럽게 배우고 즐겁게 알아가면 좋을 것 같았다.

때때로 연수가 물어보면 집에 있는 한글판의 'ㄱ ㄴ ㄷ ㄹ'과 'ㅏ ㅑ ㅓ ㅕ' 를 읽어주고 냉장고 자석으로 자음모음을 붙여 간단한 단어를 같이 만들어 보곤 했다.

김연수, 김연호, 김연제, 엄마, 아빠.. 정도가 연수가 자주 쓰는 단어들이었다.


그리고 일곱살이 된 3월 어느날, 

연수가 처음으로 문장을 썼다.  








'연수 는 엄마 를 사랑해 요'



눈물이 날 뻔 했다. 

아이가 생애 최초로 쓴 문장이 엄마인 내게 보내주는 사랑의 고백이라니... 

너무 고맙고 좋아서 아이를 보고 함빡 웃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는 글을 

저 혼자 좋아서 

엄마가 보던 한살림 소식지를 방바닥에 펼쳐놓고 

엎드려서 쓴 글씨.


엄마에게 들려주고, 보여주고 싶어서 

소중한 제 마음을  

즐겁게, 신나게 

한 자 한 자 정성껏 써준 아이. 


고맙다, 연수야. 

언제나 그렇게 행복하게 써나가렴.

너의 마음. 너의 이야기를.









오늘은 다같이 장보고 돌아오는 길에 동생들이 차에서 잠이 들어서 

동생들도 좀 더 재울겸, 따뜻한 봄날에 산책도 할겸 

미사리 조정경기장에 차를 세우고 

연수랑 엄마랑 둘이서만 잔디밭과 운동장을 걷고 뛰며 한참 놀았다. 


흙바닥에 나뭇가지로 그림도 그리고 글씨도 썼다 지우며 놀다가 

연수가 내 이름에 화살표를 긋고 '사랑해요 엄마'라고 쓴 것을 보고 

나도 답으로 '김연수씨 사랑해요 나의 첫번째 아들'이라고 썼다. ('첫번째 아들'이란 문구는 연수가 정했다^^)


연수랑 그렇게 둘이서 놀고 있자니 

동생들이 태어나기 전, 

우리 둘이 종일 같이 놀던 연수 아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연수랑 둘이만 보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늘 생각만 해오다가 

연제 낳고 일년만에 거의 처음으로 이런 시간이 생겼다. 


오늘 저녁 연수에게서는 언뜻언뜻 한결 부드러운 느낌이 느껴졌다. 

사랑한다.. 

나의 첫 아기.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