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새댁 책2016. 6. 10. 11:16
아들과 연인 1 - 10점
D.H. 로렌스 지음, 정상준 옮김/민음사

 

 

 

 

이야기가 될만하지 않은 삶이 있을까.

누구의 삶, 어떤 성장 과정, 어떤 경험도 이야기가 될 만하다. 될 수 있고, 그러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어보고, 그 경험 전체를 조금 떨어뜨려놓고 바라보면서 '아 이 삶에는 이런 면이 있구나' 생각하고 '나의 삶'을 그에 비춰 돌아볼 때 삶은 뜻밖의 위로를 얻기도 하고, 비통한 공감, 작은 깨달음도 얻을 수 있다. 

이야기가 잘 정돈된 글로 쓰여진다면 더 수월하게, 두고두고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겠다.

 

1910년대에 쓰여진 로렌스의 소설 <아들과 연인>을 한달 동안 즐겁게 읽었다.

읽는 동안에는 긴 이야기 속에서 조금 헤메는 듯이 고통스럽기도 했는데, 장편 소설, 고전소설들의 힘과 매력은 책을 마무리할 즈음에 비약적으로 커지는 것 같다. 중간중간 함께 책모임하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게 특별히 깊이 와닿는 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책을 덮으면서는 긴 여행을 마치는 기분으로 내 감상의 갈피를 잡고 글쓰기도 조금은 수월해졌다.

 

<아들과 연인>의 영어 제목은 <Sons and Lovers>로 주인공 모렐 부인의 아들들(윌리엄, 폴, 아서)과 그들의 연인들을 뜻한다. 아들들이 성장하며 만나는 연인들과 그들 사이의 이야기가 소설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에는 어머니인 모렐 부인과 그 아들들이 맺는 깊은 정신적 관계, 성장기의 인생 전체를 통해 공유하게된 삶의 가치, 태도, 서로에 대한 깊은 의존과 애정, 그로인해 생겨난 질곡과 상처에 대한 이야기가 자리잡고 있다.

 

가족간에는 어느 정도의 정신적 유대가 가능할까.

인간에게 있어 자기가 태어나 자란 가족, 가정은 어떤 의미에서든 '알'과 같다.

포근하고 따뜻한, 완벽하게 보호받는 곳으로서의 '알'이기도 하고, 언젠가는 깨고 나가 세상속에서 내 발로 서야하는 '알'이기도 하다.  

 

완벽하게 따뜻한 알도, 완벽하게 엉망인 알도 세상에는 존재할 것이다.

행복뿐이거나 고통뿐인 삶도 존재하고, 순간순간 섞이기도 하고, 삶의 어느 기간은 주로 행복이, 어느 기간은 불행이 오래 지속될 수도 있다. 

'모렐 가'처럼 엄마가 '행복'을, 아빠가 '고통'을 주로 담당할 수 도 있다.

'엄마' 곁에서 절대적인 안정과 행복을 느끼고, '아빠'가 등장하는 순간 불안과 불편함을 느낄 수 있고, 반대일 수도 있다. 형제들 안에서, 혹은 부모 전체와 아이들 사이에 긴장 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

 

이 모든 성장과정이 성인 이후의 삶을 떠받치는 바닥이 된다. 그 때문에 흔들리기도 하고, 자기 모델이나 기준으로 삼아 애써 추구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배우자의 상을 부모에게서 찾는다면..  자신의 부모를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도 아빠같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다', '아내가 우리 엄마 같았으면..'하고 바랄 수 있고, 반대의 경우라면 '나는 엄마처럼 되지 말아야지', '나는 아빠같은 사람이랑 결혼하지 말아야지' 할 수도 있다.

스스로 자신의 가정(의 한부분)이 이상적이라 느끼고, 너무나 깊이 의존하며 성장한 사람이 오히려 성인 이후의 삶과 관계에서 독립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아들과 연인>의 주인공 폴은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것이 나에게 유사한 면에서는 슬픈 공감을 일으키고, 달랐던 부분에서는 위안을 주기도 했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폴이 겪는 정신적 공황을 읽으며 나는 유교문화에서 존재했던 '시묘살이'를 떠올렸다.

부모가 돌아가신 후 3년동안 자식이 부모의 무덤 근처에 움집을 짓고 살며 부모를 모시던 의례.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했을까.. 생각해보면 그만한 슬픔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감당이 되지 않는 정신적 충격이 존재했기 때문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시공을 초월해 20세기 초반, 영국에서 살았던 로렌스(폴)에게도 어머니의 죽음은 정신적으로 깊이 의존했던, 깊게 결합되어있었던 존재가 사라지는, 자기 존재의 기반이, 자기가 속해있었고 성장해왔던 한 세계가 붕괴하는 것, 바닥이 무너지고 추락하는 것과 같은 상태를 느끼게 했을 것이다. 그 충격이 작가에게 이 소설을 쓰게 하고, 소설에 폴의 이야기로 담겨있다고 나는 느꼈다.

 

어쩌면 인간에게 자기가 태어나고 속해있었던 존재와 세계가 '죽음'을 통해 사라지는 것은 오래오래, 두고두고 깊은 상처와 공포, 슬픔을 주는 사건이었을 것이다. 로렌스로 부터 불과 100년이 지났지만, 오늘날 가족의 유대는 많이 느슨해졌다. 자극을 주는 매체가 너무 많고, 사회에는 즐거움과 관심거리가 넘쳐나므로 우리는 자신이 맺고 있는 인간적인 관계들에 대해서는 그 극진함과 집중도가 많이 약해졌다.

부모가 돌아가셨다고 시묘살이는 하는 문화는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해도 슬픔과 충격의 정도가 갑자기 약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자신의 마음이 겪는 일에 우리가 더 무심해질 수 있을 뿐이다. 현대인의 삶의 여러 요소가 그런 망각, 외면, 회피를 돕는다.

그러나 조금 더 인간적 본질을 생각해보고 싶다면, 우리는 기쁨만큼이나 슬픔에도 응당한 시간을, 정신적 에너지를 허용해야 하지 않을까..

 

붕괴 이후의 세계. 폴의 이후 삶.

궁금하고 불안하며 연민이 인다.

폴의 삶이 이야기되어서 고맙다.

읽고, 내가 생각해볼 수 있어서 고마웠다.

 

어떤 길을 걸어갈지는 그도, 나도 아직 모른다.

다만 살아갈 뿐. 때때로 아프게 추억하며.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