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mma! 자란다2014. 10. 9. 23:38







세 아이가 차례로 수두를 앓았다.
연수네 어린이집에 수두가 돌아 연수가 제일 먼저 앓았고, 
큰형이 걸린 때로부터 잠복기를 3주쯤 거치고 둘째가 앓고, 또 그로부터 2주쯤 후에 막내가 앓았다. 

연제는 수두는 약했지만 기관지염이 함께 걸려 어린 녀석이 고생하며 지냈고, 
연제가 나을 무렵에 연호가 기관지염이 옮아 힘들게 지내다가 이제야 겨우 회복되는 중이다. 
  
여름 끝물부터 본격적인 가을이 시작되는 요즘까지 근 두 달 가까운 시간을 
아이들이 돌아가며 앓는 통에 밤낮으로 마음 졸이며 보냈다. 
처음 겪어보는 수두를, 세 녀석이 모두 충실하게 앓고 낫는 과정을 지켜보았고 
수두 자체보다는 그로인해 약해진 어린 몸들이 환절기의 온도와 바람을 겪어내느라 감기를 심하게 앓는 곁을 지키면서 
못난 엄마 만나 그런것 같아 마음도 아프고 
잠을 제대로 못자고 낮에도 잘 쉬지 못해 몸도 많이 힘들었다.
이제 아이들이 거진 회복되는 즈음이 되니 엄마는 온 몸의 진이 다 빠진 것 같다.

하지만 나보다 아팠던 어린 녀석들이 훨씬 더 힘들었을 것이다. 
아직 온전히 회복하지 못한 연호나
앓고 나서 훨씬 씩씩해진 연제나 
맨 첨에 수두 때문에 잠깐 아팠던 것을 제외하면 동생들이 아픈 긴 기간동안 내내 건강하게 잘 지내주었던 연수도 
부쩍 추워진 날씨에 또 아프진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아이들은 아프면서 크는 것이라하고, 아이들이 많은 집이니 아픈 날도 많을 수밖에.. 좀 마음 편히 생각해야지... 하다가도
아픈 날들이 워낙 길어지니 엄마 마음 좀 개운해지도록 이젠 제발 아무도 안 아팠음 좋겠다..! 하고 바라게 된다. 

그래도 이만하게 지내주어서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엄마 마음졸이는 것 다 안다는 듯이 
어린 녀석들이 아프고 힘든 것을 온 힘을 다해 견뎌내고 끝내 나아주는 모습이 얼마나 고맙던지.. 
힘없이 매달리기만 하던 아이들이 조금씩 기운차릴 때 엄마를 보며 웃어주면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후.. 하고 새어나오곤했다.

다행이다. 이만해서..
고맙다. 정말 고맙다.
우리 모두 같이 잘 견뎠고.. 또 잘 회복하자. 천천히, 감사하며.. 
나도 그래야겠다. 
아이들 나았으니 이제 나 좀 앓자, 할 수도 없이 나는 계속 밥하고, 막내 젖도 주고, 아이들 책도 읽어주고, 쉬엄쉬엄 천천히.. 내 자리를 변함없이 지켜야한다. 
그래서 또 다행이다. 
긴장은 조금 내려놓고 오래 미뤄두었던 블로그 글도 이제 쓰고 밀쳐놓았던 책들도 다시 읽을 수 있게 되어서..












수두가 전염성을 갖는 1주일 정도의 기간 동안은 오롯이 우리끼리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친구들이 모인 곳에 가지 못해 답답한 것도 있지만 
우리끼리 호젓한 곳을 찾아 온종일 함께 놀고 먹고 잠자고 투닥거리고 안아주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았다.

연수 수두가 시작된 떄는 8월 말이어서 아직 꽤 더웠다. 
땀나게 놀 것은 아니지만 수두난 아이도 바람쏘이며 적당히 노는 것은 괜찮다고 해서 가끔씩 세 녀석 데리고 냇가 길로 한번씩 산책 다녀오곤 했다.
연수는 수두 발진 나기 전에 하루 저녁 정도만 열이 나면서 아파하고 발진도 많이 나지는 않고 수월하게 지나갔다. 










아직도 아침이면 동생들과 엄마와 떨어져 저만 어린이집에 가야하는 것을 싫어하는 연수는 
수두 때문에 쉬는 기간 동안 
아침에 서두르는 일 없이 맘껏 놀고, 하고싶은 것들 오래오래 하고, 저 좋아하는 간식 먹으며 지내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형이 같이 있어 제일 신난 것은 연호.
세살 터울 정도는 가볍게 극복하고 형아랑 정말 꿍짝 잘 맞춰서 노는 연호는 몸은 네살이지만 마음은 일곱살이다.
행동도 가끔은 형보다 더 의젓하고 말도 야무지게 잘 해서 형을 타이르기도 하고, 형한테 맞아서 울다가도 금새 또 형이 좋아 따라가서 노는, 연수에게는 둘도 없는 단짝 동생이다.










세 아이 앉혀놓고 사진 찍을 때면 내 어린 시절에 찍은 사진 생각이 난다.
오죽헌 예쁜 꽃밭 앞에 하얀 스타킹 신고 쪼르륵 앉아 사진찍었던 우리 삼남매와
지금의 나처럼 웃으며 그 사진을 찍고 계셨을 젊은 내 엄마와 아빠 생각이.

시간은 얼마나 빨리 흐르는지.
아이들은 자라고 어른들은 늙는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올망졸망한 어린 아이들 데리고있는 나를 보시면 "에고. 힘들겠네.."하시고는 꼭 바로 덧붙이시는 말씀 "그래도 어린 애들 키울 때.. 그 때가 제일 좋을 때야.."에 나는 이제 깊이 동의한다.
삶의 비밀 하나를 알게 된 것같다.
그냥 머리로 이해하던 때를 지나서 마음으로 절절이 공감할만큼 나도 나이를 먹어버린 것이다.


우리 아이들을 아껴주시는 명선 이모님께서 며칠전에는 '사람이 고정돼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아이들은 늘 요렇게 이쁜채로 더 안크고 말이예요' 하셨다.
만 19개월을 채운 연제는 요즘 참 예쁘다. 
아장아장 걷고 뛰고, 무어라 제 나름대로 얘기하고, 귀엽게 웃어주는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요대로 더 안 컸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왜 하시는지 알 것 같다.
나는 덧붙였다. "그러게요.. 어른들도 더는 안 늙고 말이예요..." 
내 부모님이 나이드시는 것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기도 하고, 또 내가 나이들어 가고 있음을 어느새 많이 실감하고 있어서 하는 얘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르고, 아이들은 자라고, 또 어른들은 나이들어 가신다는 것을.

막을 수 없는 흐름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지금 이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는 일 뿐이라는 것을.
지금 이 순간 우리 삶에 깃들어있는 아름다움을 찾아 깊이깊이 누리는 일. 
오래도록 따뜻하게 되새겨볼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을 일구고 그 온기로 마음을 채우는 일뿐이라는 것을.


서른일곱 나는 어쩌면 마흔이 되면 더 홀가분해지고 여유로워질지도 모르겠다.
지금이 꼭 제일 좋은 떄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지금이 제일 좋은 때가 아닐 이유도 실은 없다.
언제나 지금을 '제일 좋은 때'로 만드는 것이 행복해지는 비밀이라고 어른들은 알려주시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지금이 참 좋고, 
부모님이 건강하게 내 곁에 계셔주시는 지금이 참 좋다.
함께 애들 키우랴, 서로 맡은 일 하랴, 바쁘고 고단한 삶을 함께 꾸려나가는 우리 부부는 아직은 서로에게 부족한 것도 많지만 그래도 서로 아껴주고, 고마워하며 지내고 있으니 그것만 해도 다행이고 좋다. 
앞으로 함께 살아가는 동안 부족한 것들은 더 나아질 거라 생각하고 기대할 수 있으니 그것도 좋은 일일 것이다.











어느 비오는 날, 연수가 연제 손을 꼭 잡고 걸어갔다.
막내 동생 곁에 선 다섯살 많은 큰 형아의 뒷모습이 왠지 든든하다.










연수가 막내동생 그림책 읽어준다. 
연호는 아직 글을 모르지만 '미끌미끌 미꾸리 미꾸리는 길어~ 길면 뱀장어..' 책을 비롯해 연제가 좋아하는 보리 아기 그림책 몇권은 통째로 외우고 있어서 한장씩 넘기며 천천히 잘 읽어주곤 한다. 

형들이 보여주는 세상이 얼마나 신기할까..
연제야. 막내라 힘든 것도 많지만 참 좋은 것도 많지? 엄마도 그랬단다. ^^ 












7월 어느날, 서울시청 나들이 갔다가 건너편 대한문 앞에서 찍은 사진.



아이들이 차례로 수두 앓는 것을 지켜보며 마음 졸이고 있자니 문득 예전 어머니들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이라는 종과 함께 해오고 있는 질병, 그리고 그것을 겪고 견디며 성장해가는 인간이라는 생명에 대해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수두 발진은 혀와 눈, 코 안까지 그야말로 온몸 구석구석 돋고 물집이 잡혔다가 터져서 딱지가 앉는다. 

그것이 다 잘 떨어지고나면 몸은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어린 아기들이 그 모든 과정을 고스란히 겪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두렵기도 하면서 신비롭기도 했다. 

잘 견뎌주는 것이 정말 고맙고 대견했다.

이렇게 자라는구나.. 생명은 이렇게 약하고도 강하구나. 다시 한 번 배웠고, 앞으로 또 함께 겪어가야할 성장의 진통들이 걱정되면서도 아이들이 힘껏 견디고 겪고 자라는 곁에서 나도 함께 최선을 다해 보살피고 도우며 지나가야겠구나.. 의연하게 마음 단단히 먹어야겠다.. 생각하게 되었다.


아픈 날들에 형제들이 함께 있어 서로 아옹다옹 어울려 지낼 수 있는 것이 참 고맙고 좋다는 생각도 새삼 했다.

내가 아팠던 것을 너도 앓는다는 것, 그 고통을 이미 겪어봤기에 이해할 수 있고, 아프고 힘들 때 곁에서 함께 지켜줄 수 있다는 것.

답답할 때 같이 바람쏘이러 나가주고, 같이 웃고, 싸우고 토라져도 다시 부대끼고 의지하고 보듬을 수 밖에 없는 

우리는 형제이고, 가족이라는 것을 깊이 느낀 시간이었다. 

아이들도 어렴풋하게, 아니 이렇게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이 그냥 피부로, 생활로, 밥먹고 숨쉬는 모든 삶의 시간들과 함께 마음에 새겼으리라.




이렇게 내 아이들에게 형제가 있다는 것이 고맙게 느껴질 때마다 마음에 사무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세월호 사건으로 형제를, 자매를 잃은 아이들이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고통은 더 말할 것도 없겠지만 아옹다옹 함께 깔깔대고 투닥이며 꼭 우리 아이들처럼 그렇게 붙어서 자라왔을 그 아이들의 고통은 어찌할 것인가.


어른과 또 달리 청소년기에 이토록 큰 충격과 상실과 고통을 겪은 그 아이들이

사건의 진상도 철저히 밝혀지지 않은 채, 책임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처벌받지도 않은 채 

형제의 죽음이 묻혀지고, 죄없는 부모가 비난받는 싸늘하고 비정한 사회를 지켜봐야 한다면

그 마음의 상처는 얼마나 깊어질지.. 차마 가늠조차 하기 힘들다.


진실은 꼭 필요하다.

진실은 치유와 용서를 위해 꼭 필요하다.


백인에 의한 극심한 인종차별정책으로 고통받았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흑인인권운동가인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인종차별로 인한 갈등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설치했던 기구의 이름은 '진실과 화해 위원회'였다.

진실이 낱낱이 밝혀져야만 피해자들의 한이 풀리고, 가해자들의 반성과 참회가 가능하고, 용서와 화해가 이어질 수 있다.


세월호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독립된 조사위원회'를 만들고, 그곳에 기소권과 수사권을 부여하는 특별법은 

세월호가 침몰하는 순간 우리 사회의 침몰을 함께 본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제안한 법안이다.

헌법체계를 흔들지도 않고, 오직 성역없는 수사, 속속들이 모든 관련자료를 제출하도록 요구해 검토할 수 있는 법안이다.

국정조사에도 제대로 자료제출을 않고, 감사원 감사에도 응하지 않았던 기관들을 상대할 수 있는 최소한의 힘을 가진 조사위원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국회에서 양당이 힘겨루기와 아햡으로 일관한다면 차라리 국민투표로 결정하자는 시민단체들의 제안을 포함해 

진지하게 진심을 다해 제대로된 방법을 찾지않으면 안된다.

대충대충, 경제 살리기나 지겨우니 이제 그만하자, 정치권이 다 그렇지 뭐 같은 얄팍하면서도 노련한 계산속에 넘어갈 수 없다. 


상식있는 어른들이 버티지 않으면 자라는 아이들이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입고

귀한 목숨까지 잃을 수 밖에 없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있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환절기에 감기 한번 넘기는 일도, 수두 앓고 지나는 일도 한 가족에게는 참으로 어렵고 중한 일임을 매일 깊이 느끼고 있다.

한 아이가 자라는데 얼마나 많은 눈물과 땀과 사랑이 필요한지도 매일 배워가고 있다.

생명이 존귀하다는 것을, 생명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가를

한 생명을 키우기위해서는 내 남은 생 전체를 걸어야한다는 것을 엄마가 되고 알았기에 

물러설 수 없는 마음이 된다.


가을이 깊어간다.

날은 급속도로 추워질 것이다.

물러설 수 없는 마음들이 함께 어깨 기대고 

추운 겨울을 날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는 봄이 올 것이다. 

그것을 믿고 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