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한살림.농업2014. 10. 23. 21:27




농사를 왜 지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무슨 그런 우둔한 질문을 하느냐고, 
우리가 무엇을 먹고 사는데 
그것들이 다 어떻게 해서 생겨나는 것들인데 
당연히 농사를 지어야지, 
안그러면 무엇을 먹고살 것이냐고..

누군가 이렇게 바른 말씀을 하시면 '네, 그렇죠'하고 대답하고 싶지만
현실은 자꾸 반대로 돌아가는 듯하다.

마트에 가면 신선한 채소와 과일, 곡식과 고기가 차고넘친다.
싸게, 잘 생긴 농산물을 구입해 먹을수만 있다면 
누가 그 농작물을 키우는지, 어디서 온 것인지, 그 분은 어떻게 사시는지 
크게 관심갖지 않고 그저 맛있게 냠냠짭짭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수입개방 시대에 우리 농촌은, 농민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 
농민이 농업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처해 있다는 것.
나라가 나서서 식량안보, 식량주권 같은 것은 생각도 않고 농업을 죽이고 있다는 것.
농사짓던 땅들이 메워지고 그 위에 상가와 아파트와 공장과 유흥업소가 세워지는 것을 '발전'이고 '성장'이라고 생각한다는 것.

이런 시대에, 이런 나라에서 
농사를 짓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궁금해졌다는 말이다.








아이들과 종종 인형극을 보러가는 '암사어린이극장'의 정원은 살뜰하게 가꾸시는 먹거리들이 가득한 텃밭이다.
지난 달에 갔더니 마당의 아치형 터널 안에 호박이 주렁주렁 열려있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같은 신기한 기분을 느끼며 걸어들어가는데 호박은 꼭 등같기도 하고, 풍선같기도 했다.
그림책 '뒤집힌 호랑이'(김용철, 보리출판사)에서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소금장수가 호랑이 뱃속 구경을 하며 뒤룽뒤룽 매달린 창자와 염통을 볼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극장에서는 아이들 구경하라고 아이스박스 논에 벼까지 심어놓으셨다.

토란, 배추, 깨... 이 모든 푸성귀들을 극장에서는 또 알뜰히 거두어 드신다.

오전 공연이 끝나고 오후 공연히 시작되기 전에 배우들과 스텝들이 모두 모여 함께 점심을 먹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외곽 지역에 오랫동안 터를 잡고 어린이공연만 해오신 작은 극단의 열명 남짓한 식구들이 먹을 반찬거리들을 이 정원 텃밭에서 부지런히 키우고 계신 것이다.











사먹는 것보다는 부식비가 훨씬 절약될 것이기에 '있는 땅에서 키워먹으면 맛도 좋고 여러모로 훨씬 좋지 뭐' 하고 간단히 생각하고 말기에는 
키우고 거두는 수고와 노동이 작지 않기에 궁금해지기도 했다. 어떤 마음이실까.. 이 농사를 짓는 마음은.
극단의 대표로 보이는 분이 늘 밀짚모자를 쓰고 부지런히 텃밭을 돌보고 계신데 채소마다 지지대를 세우고, 풍성하게 열매맺고 또 거둔것을 말리기까지 하시는 솜씨도 보통은 아니신 것 같다.









묘적사에 갔을 때도 해우소 옆에 작지도 크지도 않은 텃밭이 있기에 눈이 갔다.
가지, 고추, 상추같은 채소들이 착실히 자라고 있었다.
스님들이, 어느 보살님이 가꾸셔서 절 공양에 쓰시는구나.. 싶었는데 역시 어떤 마음이실까.. 궁금했다. 
굳이 내 손으로 짓지 않아도 되기는 할텐데
그 시간에 수도를 더 하시고, 불자들과 행사를 더 하셔서 시주를 더 많이 받아서 절 재정을 윤택하게 할 수도 있을텐데 농사를 짓는다.
그것은 어떤 이유일까..










여름 끝무렵에 우리 텃밭에서는 봄에 그저 씨만 뿌려두었던 당근을 수확했다. 
상추모종 사러갔던 모종가게에서 아이들이 당근 그림을 보고는 사자고 하도 졸라서 한봉지 사고는 '이게 되겠냐' 싶은 마음으로 그저 씨만 술술 뿌려두었던 것인데
가뭄속에 파리하게 어린 싹이 나고 조금씩 자라더니 비 몇번 맞고는 줄기가 쑥 자랐다.
신기해서 뽑아보니 진짜로 당근이 나왔다!









강일동으로 이사온 후부터 3년정도 텃밭 농사를 시이모님과 함께 짓고 있다.
10년 넘게 서울에서 텃밭농사를 지어오신 이모님과 이모부님이 살뜰하게 키우고 거두어주시는 텃밭을 
우리는 그저 구경다니며 얻어먹기만 실컷 잘 얻어먹는다는게 맞는 얘기다.
이모님은 직접 키운 채소를 바로 수확해 드시는 것이 얼마나 맛있는지, 어디 가서도 이런 채소는 못 구한다는 말씀과 
약 안치고 키우니 얼마나 좋냐고 자주 말씀하신다.
시골에서 자란 어린 시절부터 늘 보고 해온 일이라 농사도 잘 지으시고, 건강에 관심도 많으시고, 또 무엇보다 부지런하시니 도시농업을 하실 수 있는것 같다. (이모님과 이모부님이 지으신 올해 우리 텃밭은 암사동 도시텃밭에 있는 200여팀중에 '우수텃밭'으로도 선정되었다! ^^)

어느날 내가 연수에게 "연수야, 할아버지 하시는 것 잘 보고 잘 배워~"하고 말했더니 이모님이 "그거 배워서 뭐하게~?"하시면서 웃었다. 
"저희집 텃밭농사 연수가 책임지고 지어야죠~"하고 말하며 나도 웃었지만 
이 시대에 농사일을 배운다는 것이, 어린 아이에게 권하고 격려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대다수인 시대가 된 것이 
씁쓸하고 마음 아팠다. 








농사를 왜 짓는가. 
자식들 먹이고 가르치고, 부모님 봉양하고, 저축도 하고, 놀러도 좀 다닐 수 있을만큼 돈을 벌기위해서 농사를 짓는다면
이제 그런 것은 더이상 농사로 가능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고, 날로 그렇게 되어간다.
도시에서 작은 텃밭을 가꾸어 제철의 싱싱하고 맛있는 반찬거리를 얻는 정도, 
아이들이 채소가 이렇게 자라는구나.. 신기하게 바라보고 배울 수 있는 정도,
그리고 어른인 우리가 자연 가까이에서 땀흘리며 생명을 키우며 작은 보람과 명상과 기쁨을 얻는 정도...
그런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오락거리, 소일거리, 여흥, 구도의 도구말고
농업이 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농업이 생업이 될 수 있는가?
묻고 싶은 것이다.

올해 채소값이 참 한결같이 쌌던 것 같다.
조금 값이 오를만하면 그 품목을 금세 수입해오니까 결국은 어떤 농산물도 싼 값을 유지하게 된다. 
그러면 소비자에게는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산자는 버티지 못한다.
값이 폭락하는 농산물에 대해서는 정부도, 시장도 무대책이다. 
채소를 밭째 버리고 수확하지 않고, 자르고 파헤쳐 또 다른 채소를 심어본들 어짜피 생산단가에 미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다가 결국 농민들은 두손 두발 다 드는 것이다. 
그 논밭을 메워 집짓겠다는 사람에게 파는 것이 제일 나은 수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많이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내년부터 쌀시장을 전면개방하겠다고 이 정부는 당당히 선포를 했다. 
고율의 관세를 매기겠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쌀산업 포기'에 다름아닌 '쌀시장 전면개방'을 선언하고 나선 나라한테 과연 국제기구가 잘도 '아구 무서워라'하고 고율의 관세에 동의해주겠다 싶다. 
쌀이 지키고 있던 이 나라 농업의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는 것이다.
 







아버지는 평생 쌀농사를 지어오셨다. 

어린시절에는 학교에서 나온 가구조사지의 아버지 직업란에 '회사원'같은 좀 폼나는 것 대신 '농업'이라고 쓰는 것이 조금 부끄러울 때도 있었지만

철든 뒤에는 내가 농민의 딸이라는 것, 아버지가 농부라는 사실이 참 자랑스럽고 좋았다. 


할 수 있다면 나는 내 아이들중에 누군가가 농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연을 사랑하고, 계절과 생명의 순환과 이치를 알고, 부지런하고, 새벽에 풀숲에 내린 이슬을 밟으며 벼를 살펴보고, 밭을 가꿀 수 있는 농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니, 아이들에게만 바랄 것이 아니라 내가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다. 

내 손으로 내 먹을 것을 키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런 나도 지금은 도시의 6평짜리 작디작은 텃밭 하나도 겨우 구경만 할 뿐이다.


농민은 점점 줄고 있다.

우리 땅에서 재배되는 농산물의 품목도 아마 많이 줄었을 것이다.

우리 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23%, 그나마도 쌀 자급률이 80% 대를 지켜주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수치다. 

쌀시장 전면개방으로 많은 소농들이 쌀농사마저 포기한다면 우리나라는 스스로 부식은 물론 주식조차도 자급을 못하는 

그야말로 식량 예속국이 될 것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먹는 전체 농산물중에 쌀을 제외한 채소, 과일, 고기 등의 식량은 단 3.7%만이 우리 땅에서 우리 농민에 의해 생산되고 있다. 

그마저도 이제 포기 일로에 서있는 것이다.

농업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보호하지 않고, 그깟 쌀쯤, 그깟 식량쯤 핸드폰 팔아, 자동차 팔아 사다먹으면 되지. 라고 생각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누가 농사를 지을 수가 있을까. 

누가 남을까. 



유기농업에 평생을 바치며 한살림 생산자공동체를 꾸려온 농민분들이 계시고, 

오늘도 도시의 소비자들에게 직거래로 매주 '꾸러미'를 보내주시며 자립하려는 귀농, 소농 생산자분들이 전국에 계시고

아이들을 키우고, 부모님을 봉양하며 정말로 묵묵히 귀한 농토와 농업을 지키고계신 농민분들이 정말로 많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농사를 왜 짓는가' 외람되게 묻고 싶었던 것은

이제 더이상 농사로는 먹고살 수가 없는데, 죽어라 죽어라 하는데 어떻게 농사를 지을 수 있겠는가, 살아라 살아라 해도 어렵고힘들고 중요한 일이 농사인데 

이런 떄에도 농사를 버리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 분들의 마음은 어떤 것일지 

내가 꼭 들어봐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93년 우루과이라운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세계화 협상의 고비들마다 쌀수입 개방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은 농민분들의 지난한 투쟁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제 농민분들은 그만한 힘이 없으실 것 같다.

올해 7월 농림부장관이 달랑 기자회견 한번 열어 '쌀시장 개방 방침'을 발표했을 때 

농민단체에서는 세종시 정부청사 앞에서 상여를 메고 상복을 입고 장례를 치르며 쌀을 뿌렸지만 

그 시잔은 우리 아버지가 받아보시는 농민신문의 1면에만 나왔을뿐 어느 TV방송에도 나오지 않았다.

그때 마침 순천 야산에서 발견된 유병언씨의 사체 소식과 그 아들의 체포 과정만 요란하게 방송에 넘쳐났을 뿐이다.

나는 고향집에서 아버지와 함께 TV를 보고 있었는데 '세월호 사건 100일'이기도 했던 시점이라 특별법 제정이나 100일 지나도록 지지부진한 진상규명, 실종자 수색 등에 대한 여론을 덮기위해 유병언 일가에 대한 언론보도가 집중되는 것 같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렸었다.

서울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그때 같이 덮어졌던 정말로 중요한 또 한가지는 바로 '쌀시장 개방'이었다는 것을 아버지께 말씀드리지 못했구나... 혼자 후회했었다.


2003년 멕시코 칸쿤에서 열렸던 도하협상장 옆에서 쌀시장개방을 반대하는 한국농민 이경해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죽는 나라라,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던 고등학생들과 무고한 시민들이 300명씩 떼죽음을 당하고, 

공연을 관람하다가 또 죽고 하는 나라라 이제는 우리 모두가 죽음을 그만 옷처럼 입고 다니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한 명의 죽음은 안그래도 숨쉬기 힘든 사람에게 그저 작은 짓눌림 하나 더 얹는 정도 같이 느껴지지만

2002년의 그 분 생각이 나는 요즘 문득문득 다시 나곤했다. 

그 자라에 내 선배 한분도 함께 있었는데.. 그 충격과 상처를 어떻게 안고 살아갈까. 자신이 보는 자리에서 누군가가 목숨을 내놓는 장면과 그렇게라도 지키고 싶어했던 가치들이 또다시 종잇장처럼 버려지는 현실속에서 그는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들에 답을 찾아가야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